국유지 특례 매각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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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버려지다시피한 국유지에 수십년 전부터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온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 주민 10여명은 요즘 마음이 무겁다.

집터.밭 등의 새 주인이 나타나 땅을 비우거나 사 갈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 세무공무원 이석호(70)씨가 불법 매각한 국유지 중 일부를 선의의 피해자 구제를 위해 환수하지 않고 특례 매각하자 점유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 국유지 불법 매각=1993년 광주지검은 李씨가 71~74년 해남.목포세무서 재직 때 목포.무안.영암.해남 등의 국유지들을 불법 매각한 사실을 밝혀냈다.

국유지 관리 업무를 보면서 친.인척 등 30여명의 이름을 빌리거나 도용해 불법 취득하고 일부는 제3자에게 전매한 것.

그 면적이 ▶도로.하천.연못 등 행정재산 5백만평▶논.밭.대지 등 잡종재산 5백만평▶산림 2천만평 등 3천만평이나 됐다.

◇ 국가환수.특례매각=이들 토지의 환수가 95년 시작돼 李씨 친.인척 명의는 대부분 끝났다.

그러나 제3자 취득 토지는 불법 매각임을 몰랐던 점을 감안, 97년부터 특례 매각을 했다. 감정가 20%에 다시 사 가게 한 것. 대상이 잡종재산 1백20만평과 산림 6백40만평이고, 절반 가량이 매각됐다.

재정경제부는 특례 매각 때 점유자들과 협의를 거치도록 하다 지난 4월 이를 없앴다. 산림청.지자체에 '등기부상 소유권자와 점유자 간에 분쟁이 있는 경우 등기부상 소유권자에게 특례 매각하라' 고 통보한 것.

◇ 주민 반발=점유자들은 정부 계획만 믿고 있다 엉뚱한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한다.

해제면 유월리 주민들의 경우 환수 시작 후 등기부상 소유권자들로부터 "싼 값에 사가라" 는 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산림청 영암 국유림관리소측이 '정부가 환수해 공개 매각할 것 같다' 고 말해 매입을 미뤄왔다.

그런데 특례 매각으로 변경되고 최근 마을의 집터 등 6천여평이 金모씨 등에게 매각처리됐다. 金씨 등은 "땅을 팔아야겠으니 비워주든가 사가라" 며 조르고 있다.

주민 姜모(55)씨는 "평당 6천~7천원에 살 수 있던 것을 이젠 3만~3만5천원을 줘야 할 판" 이라고 말했다.

점유자와의 분쟁이 있는 불법 매각 국유지의 특례 매각이 본격화하면 유월리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영암 국유림관리소측은 "주민과 땅 매입자의 절충을 수차례 유도했으나 이해 차가 커 실패했다" 며 "개인간 분쟁이라서 주민들을 행정적.법률적으로 고려해 줄 만한 여지가 없다" 고 밝혔다.

또 광주지방국세청 관계자는 "수십년간 거주.경작해온 사람들에게 땅이 되돌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감정가로 사고파는 게 최선책일 것 같다" 고 말했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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