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한부' 개혁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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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 흐름이 숨가쁘다. 공적자금 50조원 조성과 2차 금융구조조정 계획 발표에 이어 엊그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해 12개 개혁과제를 선정하고 책임론을 강조했으며 어제는 부실기업 판정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현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가 너무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비판해온 우리로선 이러한 인식전환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가 너무 빨라 행여 '조급증' 에 빠진 것은 아닌지, 경제개혁을 여론만 의식한 '이벤트' 성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그럼으로써 구조조정이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정부는 올해 말이나 내년 2월까지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시한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캘린더성 구조조정은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겠지만 종국적으로 숱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미 시한부 구조조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문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우차나 한보철강 매각 실패에서 보듯 국내 자산을 외국에 팔 경우 시한을 못박아 놓으면 제대로 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 경기가 안 좋은 지금 상황에서 시한부 개혁으로 기업부도와 은행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경우 우리 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울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캘린더성 구조조정을 지양하고, 철저하지만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원론' 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정부 만능주의' 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원칙적으로 부실기업 정리는 채권단의 몫이지만 그동안 채권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 개입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정부는 개입에 따른 후유증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가령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게 부실기업을 선정했다고 해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상 부실기업 임직원들의 불만은 정부로 귀속되게 마련이다.

재계는 이미 정부를 향해 화살을 쏘고 있지 않은가. 정부 주도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된다는 점도 신경써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부실정리는 떠들썩하게 공표하면서 하는 게 아니라 조용히 해야만 충격과 후유증이 최소화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서 정부는 구조조정 실행과정에서 나타날 각종 사회적 파장을 어떻게 감내할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부실 기업.은행의 정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할 노동계의 파업과 금융.실물시장의 혼란, 그에 따른 성장둔화와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처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만 최근 정부의 긴박한 움직임이 이벤트나 립서비스용이 아님이 입증될 것이다. 떠들썩하게 '계획만 발표하는 정부' 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냉철한 정부' 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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