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결혼식으로 훼손된 전쟁기념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일요일에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오랜 비 끝에 찾아온 맑은 가을 날씨 덕분인지 기념관 뜰을 찾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외국인들도 많이 있어 한국전쟁을 도와줬던 외국인들에 대한 감사가 절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광장 우측의 돔형 전시물에 들어설 때였다. 야외 결혼식이 끝난 듯 전시물 입구엔 '신부 대기실' 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고 주위엔 탁자와 의자 등이 혼잡스럽게 널려 있었다.

의아해하면서 전시물 안에 들어서니 병풍과 교자상들이 한국전 상황을 묘사한 벽화를 가린 채 세워져 있었고, 먹다 남은 김밥들이 널브러져 있어 마치 폐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같이 왔던 가족들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옆에서 네살 된 아이가 "저게 뭐야" 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마침 입구에 외국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내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일요일 야외 결혼식도 좋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공공시설의 전시물 안에까지 폐백시설 등을 차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윤정.서울 서초구 반포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