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업 큰 상품] 선일금고의 특수 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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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선일금고는 올 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보안박람회에 참가했다가 미주 지역의 자사 딜러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들은 선일이 만든 금고의 성능과 품질이 알려질수록 선일의 판매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수입업체는 자신들의 금고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선일의 금고를 전량 수입해 세계 시장에 내놓겠다며 선일의 주식지분 참여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선일금고는 주문을 받아 특수 금고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미술품.골동품.병원용 마약을 보관하는 금고 등 1천여가지의 금고를 어떤 크기나 규격으로 주문해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생산라인을 갖췄다.

이들 금고는 산소 용접기.고강력 드릴로도 뚫을 수 없도록 만들어지며 한번 실내에 부착된 금고는 지게차를 이용해야 들릴 정도의 특수 고착시스템으로 단단히 고정된다.

이 회사 김용호(62)사장은 "선일의 금고는 외부의 충격을 받을수록 더욱 단단히 잠궈지는 것이 특징" 이라고 말했다.

금고제작에 들어 가는 특수금속은 선일이 국내 여러 철강회사에서 만드는 금속을 독자적으로 융합해 개발한 것이다.

세계 유명 금고업체들이 선일의 생산 설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견학 요청을 했지만 선일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금고 크기와 규격별로 원자재를 잘라내는 레이저 가공기와 특수 금형 등은 선일이 자체 고안해 이탈리아 공작기계 업체에 주문 생산한 것으로 다른 업체에서 복사하지 못하도록 생산 설비의 금형과 주요설계 도면을 폐기했다.

선일은 미국 공산품 규격(UL)마크를 지난해 11월 따냈다. 아시아 1백80여개 금고 메이커 중 일본의 두곳을 제외하면 선일이 처음으로 따낸 것이다. 러시아.스웨덴에서 실시한 안전 규격검사도 통과했다.

이 검사를 통과하려면 15분 동안 망치나 해머로 금고를 내리쳐도 부서지거나 열리지 않아야 한다.

선일은 지난해 1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지만 범용 금고생산을 본격화하는 내년부터는 연간 5천만달러어치 이상을 해외에 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에 있는 맥도날드 등 패스트 푸드점이나 술집 등에 쓰이는 금고는 열개 가운데 두개가 선일의 제품이다.

金사장은 "세계 금고시장 규모가 연간 20억달러에 이르기 때문에 시장개척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며 "미국.유럽 등에 자체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고 말했다.

金사장은 6.25전쟁 때 부모.형제들과 헤어진 전쟁 고아 출신으로 캐비닛 공장에 들어가 일한 것을 계기로 금고 제작에 눈을 뜨면서 50년 가까이 금고생산 외길을 걸어왔다.

베트남전 때는 통킹만에 정박중인 미국 항공모함의 작전서류용 금고가 고장나 열지 못해 애를 먹자 金사장이 현지에 달려가 해결했다.

또 3공화국 때 여당의 정치자금을 모아둔 금고를 열어 당시로선 거금인 50만원의 수고비를 받은 일화도 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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