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그린 '그 때 그 사진 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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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점가에서 가장 독자층이 엷다는 분야가 미술 관련서적이지만, 최근 몇년새 독자층이 형성되어 가는 긍적적인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집은 이와 또 달리 여전히 취약한데, 말하자면 미술장르의 하위장르이자 '행랑채' 인 셈이다.

사진집 '그 때 그 사진 한장' 은 이런 궁핍함 속에서 나온 순도 높은 포토 저널리즘 성취로 평가할 만하다.

'그 때 그 사진 한장' 은 1969년 이후 찍은 사진을 시기별로 편집했다.

시기는 제1장(1968-79년)제2장(1980-89년)제3장(1990-91년)의 식이다.

중요 사건별 망라주의 방식도 아니고, 작가가 일간지 사진기자(한국일보, 동아일보)로 근무하면서 얻었던 사진을 자기 나름으로 펼쳐놨을 뿐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얻는 느낌은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정리하자면 현대사 속 우리의 집단적 기억들이 하나 둘씩 되살아난다는 측면이다.

그의 지론 대로라면 '오늘의 기념사진이 내일의 역사사진이 된다' 것이리라. 즉 분명 전민조의 사진이란 과장된 쉰 목소리의 증언이 아닌데도 이런 정서적 환기(喚起)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진집 앞 쪽 '함석헌 옹' .1971년에 찍은 이 사진은 '만화로 보는 성서' 를 얹어놓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태무심하게 쉬고 있는 평범한 노인 함석헌 선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없었더라면 현대사가 또 얼마나 허전했을까 하는 느낌, 그러나 그런 '말과 언어의 맹장(猛將)' 이 일상 속에서는 이토록 편안한 보통 노인이었던가 하는 두겹의 느낌 같은 것…

경회루 앞에서 벌이는 자선 파티를 준비중인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담긴 '경회루 파티' (1972년)도 관심이 간다.

비교적 소박한 투피스 차림의 육여사가 문 앞에 서서 줄 지어선 채 눈도장을 찍으려했던 당시의 유명인사들을 맞고 있다.

육 여사 관련 사진으로는 그 사후 3년이던 1977년 불탄일에 이후락씨가 군중 틈에 끼어 눈을 감고 합장하고 있는 모습도 망원렌즈로 잡았는데 이채롭다.

이밖에 표지사진으로 된 가택연금 중인 김대중 당시 야당총재의 전화받는 사진(1987년), 여의도 TBS사옥 준공 파티장에서 모 연예인의 손에 부드럽게 입마춤하는 삼성 이병철회장의 노신사 모습(1980년)포착 등도 흥미롭다.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의 이규환 감독의 병상 표정(1982년)원로 시인 미당 서정주 선생이 짐짓 지어보이는 위악적(僞惡的)표정 등도 오래 여운이 남는다.

"전민조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행간을 읽는다" 는 평론가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전민조는 '서울 스케치' '얼굴' '이 한장의 사진' 등의 사진집을 갖고 있다.

조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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