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의 길] 북한 평화보다 통일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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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북한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군축과정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은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뤄진 뒤 군축논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우리측 입장과는 달리 신뢰구축.군비통제.감군 등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남북한간에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열어 군축을 실시하는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미국간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완성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북한은 평화문제가 반드시 통일과정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우리측의 평화공존론이나 평화정착 주장을 '2개 조선' 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하려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비난해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 남북 공동선언에 통일방안이 유난히 강조된 반면에 정작 평화항목이 빠진 것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평화보다 통일을 우선시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평화정착에 대한 포괄적 구상이 잘 드러난 것은 1988년 11월 중앙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정무원 연합회의에서 채택한 평화제안이었다.

이 제안에서도 통일지향.외국군 철수.남북군축.당사자 협상 등 '평화 4원칙' 이 강조됐다. 이 제안에 따르면 남북한 군축이 3단계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병력을 감축하고 이에 상응해 군사장비를 감축하며 군축 시작 6개월 안에 모든 민간 군사조직(예비군.노농적위대 등)을 해체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북한은 특히 군축과 미군 철수를 연계시키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혔는데, 이에 따르면 ▶1년 안에 남북한 40만명 수준으로의 감군과 미군의 부산~진해를 잇는 선으로 철수▶다음 2년 안에 25만명 수준으로의 감군과 미 지상군의 전체 철수▶군축개시 4년째부터 남북한 군의 10만명 이하 유지 및 미 해.공군의 완전 철수 등이었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10만명선의 감군과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너무 지나치게 전격적으로 군축을 단행하자는 것인데다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한 것이어서 우리 정부가 전혀 호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90년대 초반 이래 '느슨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한 이후에도 군축문제에 관한한 1988년의 구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김일성(金日成)주석은 1994년 4월 "연방제 통일국가에서 국방과 외교는 일정한 기간 북과 남이 각기 자기의 지금 체제를 그대로 유지" 하게 하고 "북과 남 사이에 화해가 이뤄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군대를 각각 10만명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거듭 주장한 바 있다.

그는 10만명 수준의 감군 시점에서 미군의 완전 철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최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의 통일 이후 주둔' 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평화정착과 주한미군의 상관관계가 더욱 관심을 끌 전망이다.

다만 金위원장이 金주석의 통일유훈을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유념할 대목이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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