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강초현 선수'로 부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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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림픽 열기로 전국이 후끈하다.

개막행사에서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과 북의 대표단이 손에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을 위성중계를 통해 지켜본 많은 사람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을 비롯해 '코리아 대표단' 의 동시입장을 지켜보던 현장의 관객들도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개막식의 감격 때문일까. 경기 중계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북한 선수에게 보내는 응원도 뜨겁다.

유도 경기에서 북한 선수의 패배 판정을 내린 심판에게 분개하는가 하면, 북한의 계순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시드니 올림픽은 한민족에게 '우리는 하나' 라는 공감대를 넓혀주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스포츠가 일궈낸 또 하나의 성과다.

이런 시드니 올림픽이지만 경기소식을 전하는 보도들을 접할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운동선수의 경우 명칭은 빼고 이름만 적는 언론 관행때문이다.

여자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따 고국에 첫 메달을 안긴 강초현(18)선수의 승전보는 한결같이 '강초현이...' 로 시작된다.

유도 결승에서 아깝게 일본에 진 정부경(22)선수나 올림픽 펜싱 사상 처음으로 고국에 동메달을 선물한 이상기(34)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따지고 보면 이런 언론 관행은 운동선수에게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가수.코미디언.탤런트.영화배우 같은 연예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향은 최근 들어 작가.화가.연주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로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말과 글은 사람의 사고를 지배한다' 고 한다. 혹여 우리네 인식 속에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을 '대단치 않은 존재' 로 여기는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이런 관행은 보도를 접하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 경시풍조를 심어줄 우려도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학자는 물론 일반시민에 관한 보도 가운데 직함이나 '씨' 를 달지 않은 것은 없다. 심지어 굵직한 활자로 사회면을 장식하는 범죄자까지도 그렇다.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모두 무죄' 여서가 아니라 범죄와 사람은 다르다는 인간존중의 철학적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존대말이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운동선수들의 이름에 '선수' 를 달아주자. 그래서 우리 사회가 선수를 존중하는 사회임을 보여주자.

홍은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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