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추천한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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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난해 이 시대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자신의 마지막 영화의 제목처럼 그렇게 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마치 자신의 길을 예견이라도 했던 듯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부부애정학개론' 같은 영화 한편을 남겼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인 작품을. 당대 최고의 스타 부부가 출연하여 적나라한 섹스신을 펼쳐 보인다고 하여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그러나 파격성과 선정성이 앞서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그 보다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노장의 깊은 통찰력과 애정이 절절이 배어있는 성찰적 영화의 성격이 강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영화는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여기에는 성인 가족들끼리라는 전제가 붙는다. 가치 전복적인 영화들만을 주로 만들어 왔던 큐브릭은 도대체 어떤 가족관을 가지고 있을까?

그가 '시계태엽장치 오렌지' (1971년)를 만들 무렵이었다면 당연히 가족의 해체라는 극단론을 펼쳤겠지만 노장의 연륜은 한쪽으로 치우침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의사 하퍼드(톰 크루즈)와 그의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는 미국의 미남미녀로 남부럽지 생활을 영위해 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왠지 모를 틈새가 존재한다.

부부일지라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욕망 탓이었다.

부부간에 생긴 균열을 대충 봉합하여 강요된 화해를 모색하기 보다는 큐브릭은 저 무의식의 심연(深淵)을 향한 오딧세이로 새로운 관계정립을 꾀한다. 그 방법은 두 눈 질끈 감고 성의 팬터지에 동참하는 것 뿐이다.

김시무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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