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화라 부녀 오늘 한 무대에서 첫 앙상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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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 부분에서 아빠 연주가 자꾸 느려져요.” “내 속도가 맞는 것 같은데, 다시 해보자.” 김대진(오른쪽)·화라 부녀의 연습 시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조용철 기자]

딸은 말이 빨랐다. 만 한 살 때쯤 차 안에 틀어놓은 음악을 듣고 “슬프다”고 표현해 아빠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감수성이 예민했다. 손도 빨랐다. 딸이 작은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을 보고, 아빠는 참 재주 있는 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피아니스트 김대진(48)씨, 딸은 화라(19)양이다.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이름난 제자를 여럿 길러냈다. 하지만 딸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도 음악 공부하기를 머뭇거렸다. “서너 살 됐던 아이가 피아노에 앉아서 노는 걸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말리게 됐어요.” 직접 걸어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화라양은 “어려서부터 아빠가 ‘피아노는 남자 악기’라고 늘 강조했던 게 기억나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결국 바이올린을 들었다. “네 개밖에 없는 줄에서 천만 가지 표정의 음표가 쏟아져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죠.” ‘음악을 안 하면 선물을 주겠다’ 는 회유도, ‘변호사가 되면 멋있을 것 같다’는 권유도 모두 부모의 헛수고가 됐다. 네 살 반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딸은 3년 뒤 서울시향의 오디션에 참가해 사상 최연소 협연자 기록을 세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미국 아스펜 음악제 콩쿠르의 협주곡 부문에서 우승하고 현재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정경화씨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김씨는 또 여러 번 망설였다. 화라양이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을 때 그는 수없이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집에서 반주를 맞춰주며 연습을 시킬 수도 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연주 기회를 잡아 딸에게 무대 경험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손을 뗐다. “학생들에게 쏟는 정성의 3분의1만 딸에게 보여도 좋겠다”는 ‘구박’을 아내에게 받았을 정도다. 열세 살 된 화라양을 일찌감치 미국에 보낸 것도 아이의 진로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였다. “주위에서 ‘김대진의 딸이니 집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겠다’고 할 때마다 아빠에게 서운했을 정도로 별로 개입하지 않으셨어요.” 딸은 “좀 더 커서야 아빠의 뜻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아빠가 음악을 한다고 해서 쉽게 기회를 얻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번 무대에 서고, 연주해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하고 싶었죠”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초등학생이던 화라양와 작은 무대에서 함께 연주한 후 한 번도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없는 이유다. 둘은 이달 한 무대에서 베토벤·바흐·생상스 등을 연주한다. 사실상 첫 앙상블이다. 김씨가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고 판단해 마련한 무대다.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라는 게 피아니스트 아빠가 쓴 ‘육아일기’의 결론이다.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는 취미로 클라리넷을 하지만 ‘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연주자의 길은 거들떠도 안 본다. 저절로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란 첫째 화라양과 전혀 다르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화라의 길은 온전히 자기 거에요. 아빠의 명성을 이용하든지, 아예 혼자 크든지 말이에요.” 일부러 무심하게 구는 방법으로 딸의 성장을 돕는 피아니스트 아버지와 그를 이해하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딸의 음악 호흡은 14일 오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호정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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