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식량지원 국회동의 받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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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한은 지난 1일 끝난 제2차 장관급 회담에서 '남측은 북측이 연이어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실정에서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북측에 식량을 차관으로 제공하는 문제를 검토해 추진한다' 고 합의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최근 들어 약간 호전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연 1백만t 이상 부족하다는 게 국제기구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단, 몇 가지는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차관 형식의 식량제공은 전례없는 일이고, 성격상 지원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 남북협력기금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일시적인 자연재해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 탓으로 보이는 만큼 식량지원도 앞으로 연례화.정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식량지원 문제는 단순한 인도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과제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따라서 지원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며, 식량을 지원한 이후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실적' 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는 이번 식량지원에 앞서 국회의 동의절차부터 밟는 게 바른 순서다. 재원을 마련하는 데 공연히 '꼼수' 나 쓰려 들다가는 자칫 부작용만 불거진다.

야당과 국민에게 당당히 필요성을 설명하고 활발한 토론과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우리도 쌀을 수입해 먹는 마당에 국회마저 우회(迂廻)하고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려 해선 여론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2차 장관급 회담 직후 "북한측이 제공받은 식량을 몇 년 내에 상환한다는 특정의 조건을 제시했다" 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제 통일부 당국자는 "특정의 조건은 없다" 고 발뺌했다. 남북간에 식량지원 규모.방법에 대해 무슨 말이 오갔는지 궁금한 판에 이런 식으로 말까지 바꾸어선 의혹과 불신만 커진다. 정부는 국민 앞에 좀더 투명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쉬쉬하는 태도로는 앞으로 펼쳐질 각종 경제협력에서도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비단 식량뿐 아니라, 예컨대 '경의선 도로개설시 북한군 무혈입성' 같은 주장.논란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나서서 적극 해명하고 대책을 설명해야 국민이 납득하고 안심할 것 아닌가.

대북 식량지원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이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며, 또 북한에 당당히 요구해야 마땅하다. 지원규모가 커지고 정례화하면 군사적 긴장완화 면에서도 상응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식량지원 과정은 물론 식량지원 결과 북한도 이러이러한 호혜적(互惠的) 조치를 취했다는 것까지 정부가 챙기고 그때그때 발표해야만 국민도 지원에 따르는 부담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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