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대출' 축소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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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법 거액 대출사건의 외압.배후 세력 실체와 관련해 관계자들의 적절치 못한 해명.발뺌이 잇따라 진상 규명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특히 수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 해당 은행장과 여당 최고위원까지 나서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의 무관함과 외압은 없었다고 강조하는 모습이 사건의 축소.은폐에 총체적으로 매달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와 함께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지점장을 중심으로 한 대출 사기극으로 결론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니 수사 결과가 과연 국민의 의구심을 제대로 풀 수 있을까 걱정이다.

불법 대출기관의 책임자격인 한빛은행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외압.청탁이 개입되지 않은 지점장과 업자간의 부도덕한 사기극" 이라고 단정한 것은 난센스다.

이미 짧은 기간에 이뤄진 1천억원대의 대출이 과연 은행 본점 모르게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돼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은행장도 바로 의혹의 당사자이고 최소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셈이 아닌가.

더구나 朴장관의 조카를 자칭하는 박혜룡씨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만나고 지점장에게 잘 봐주라는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밝혀져 검찰의 철야조사를 받은 이수길 부행장에 대해 은행장이 아무 근거도 없이 "절대로 단언하는데 부행장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 고 단정한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박지원 장관 감싸기도 생각해 볼 일이다. 權최고위원은 "지난해 신용보증기금 전 지점장 이운영씨를 만났었는데 朴장관 얘기는 없었다. 朴장관은 관련이 없다" 고 밝혔다.

비리 혐의로 수배 중인 이운영씨는 최근 양심선언이라며 朴장관이 자신에게 두차례 대출 압력 전화를 걸어왔다고 폭로한 사람이고, 權최고위원은 여당 실세 중 실세로 알려져 있다.

실세 정치인이 도피 중인 피의자를 만나 사건 개요를 알아봤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특정인 관련 여부를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검찰권 독립에 시비가 일고 있는 마당에 집권당 실세 간부가 수사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당사자인 朴장관 스스로 밝혀야 할 부분도 있다. 구속된 박혜룡씨에 대해 문화관광부 대변인은 "친인척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름은 기억하고 있으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朴장관이 말했다" 고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지 않은가.

또 한빛은행 李부행장이 朴장관과의 세차례 통화 내용이 불법 대출건이 아니라 인사 청탁이었다고 밝혔으니 朴장관은 인사 청탁 내용과 정당성에 대해서도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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