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권희로씨의 불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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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9월 '국민적 환영' 까지 받으며 영주 귀국한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權禧老.71)씨가 고국생활 1년 만에 철창신세를 지게된 데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權씨와 나이가 비슷한 한 할아버지는 "고국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는 줄 알았는데 불쌍하다" 고 말했고, 40대 회사원은 "영웅처럼 여겨지던 그가 여자문제로 범죄를 저질렀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고 말했다.

40대 초반의 유부녀 때문에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부린 데 대해 한 50대 주부는 "주책" 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 여자 때문에 빚어진 '치정극' 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여느 사건과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權씨는 평생을 감옥에서 살다시피한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 사회 물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고, 정에 굶주린 상태였을 것이다.

길에서 구걸하는 할머니에게 돈을 집어주며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라고 하거나, 시장에서 장사하는 노인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며 필요없는 물건도 구입했던 그의 행동은 그같은 심적 상태를 잘 보여준다.

특히 얼마 전 부인이 돈을 갖고 도망간 일은 그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겼다. 이런 상태에서 한 여자를 알게 돼 깊이 빠져들었지만 그녀가 유부녀였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또 한번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를 다시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아무리 사회 현실을 모르고 정에 굶주려 있었다고 해도 그의 범죄는 변명이 있을 수 없다.

사실 權씨에 대한 평가는 귀국 당시부터 엇갈렸다. '민족차별에 저항한 한국인'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범죄인' 등이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權씨를 폭력배를 살해한 또다른 폭력배로 평가하는 여론이 많았다. 그래서 權씨가 국민적 영웅처럼 대접받는 분위기에 의아해하는 일본인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범죄 동기 때문에 '범죄인' 은 묻혀 넘어갔다.

그가 자유와 고국을 찾은 지 1년 만에 또다시 구속될 처지에 놓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귀국을 동포애로 환영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씁쓸하긴 하지만 이제는 '재일(在日) 무기수 권희로' 를 '범인(凡人) 권희로' 로 끌어내려야 한다.

강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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