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신인문학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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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진소설가 L씨는 해마다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원한다.

'불변의 고급 독자' 수만명이 있고 소설지망생들의 우상이어서 신문사들은 앞다퉈 L씨에게 심사를 예약해놓는 것이 관례다.

대학 교수 자리도 사양하고 남 앞에 자신을 극구 드러내지 않으려는 L씨가 그답지 않게 심사위원을 자청하는 것은 응모작들을 심사하며 젊은 소설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그 초발심을 다잡으려 함이다.

신춘문예는 그 이름답게 작품의 내용.형식에서 한국문학에 새 물줄기를 대왔다.

문단에 나오는 데는 세 길이 있다.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추천이나 신인문학상, 그리고 직접 작품을 펴내는 경우다.

이 중 1925년 시작돼 2천여명을 배출한 신춘문예가 역사나 권위에서 압도적이다.

그러나 90년대 들면서 신춘문예 무용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첫째는 이제 신인 등용은 문예지에 맡기라는 것이고, 둘째는 신춘문예가 타성과 권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전국 일간지들이 연말에 일제히 시행하는 데 따른 심사시간의 결핍과 응모자들의 선택권 박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타성과 권위' 라는 측면에서라면 무용론은 차라리 '유용론' 이 돼야 한다.

천하의 작품을 응모받아 파벌과 경향이 고루 섞인 심사위원들이 심사하는 응모와 심사의 열린 마당이 바로 신춘문예의 영예요, 권위다.

당선자들은 문예지에서와 같이 자기 출신들끼리 키워주는 도움도 못받고 오로지 작품 자체의 영예와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단 셋째의 응모자들의 신문별.시기별 선택권을 넓혀주기 위해 중앙일보는 신춘문예를 가을철로 앞당겨 올해부터 '중앙신인문학상' 으로 확대, 개편했다.

"며칠이 마감입니까. 주소는 여기 여기가 맞지요. " "응모작에 틀린 부분이 있는데 지금 고치러 가도 되나요. " 지난달 말 마감을 앞두고 문화부원들이 일상 업무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방학이나 휴가 대신 열대야를 원고 앞에서 뜬눈으로 지새우고도 마지막 한 줄, 한 의미와 씨름하는, 그 안타까움이 그대로 들리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수만편의 응모작이 쌓여갔다.

내용이나 수준은 다음으로 넘기더라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주고 싶은, 문학으로 승화시키고픈 사연과 뜻들이 우리 민족에게는 유별나게 많다는 증거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직 깊고 건강하다.

이런 열대야의 초발심들이 올 가을 외로움을 익게 할 것이다.

이경철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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