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 '고래잡이'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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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래잡이(捕鯨)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의 싸움이 시작됐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30일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주미대사를 국무부로 불러 일본이 북태평양에서 실시 중인 과학연구 목적의 고래잡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만약 중단하지 않으면 경제제재 조치를 발동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앨런 라슨 차관은 또 일본측 포경에 항의해 31일부터 일본의 기타큐슈(北九州)에서 열리는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환경각료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했다.

외신들은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연간 8백만달러(약 88억원)어치의 어패류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일본이 지난달부터 잡아들이고 있는 고래가 미국 국내법에 지정된 보호종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 7월 29일 정부 소유 포경선을 북태평양에 출항시켜 2개월 동안 향유고래 10마리와 브라이드 고래(열대고래) 50마리 등 모두 1백60마리를 잡아 생태정보를 연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다른 고래도 안되지만 특히 향유고래는 멸종 위험에 처한 종(種)이라며 어떠한 목적으로든 포경을 용납할 수 없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지난 7월 30일 도쿄(東京)에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상과 회담에서 "포경 협정에 위반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깊이 우려한다" 며 "상업 목적이든, 과학연구 목적이든 일본의 포경계획이 실시돼선 안된다" 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앞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향유고래와 열대고래에 대한 조사포경 계획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뉴질랜드 등도 일본의 포경확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제포경조약(IWC)가맹국들은 7월 초 호주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일본의 포경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번 고래잡이는 상업 목적이 아닌 과학연구 목적이어서 IWC에 위배될 것이 없다며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래의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면 오히려 멸종위기로부터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일본은 1987년부터 해마다 4백40마리의 밍크고래를 남극해에서 연구 목적으로 잡아들이고 있어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도 좋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향유고래잡이에 나서자 국제사회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에선 전통적으로 고래가 미식(美食) 중 하나로 식도락가들로부터 사랑받아와 시험포경 등 고래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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