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불법대출 규모 파악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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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빛은행 불법 대출사건 및 신용보증기금 지급보증 압력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져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지검 조사부(부장검사 郭茂根)는 지난달 30일과 31일 불법대출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47)씨의 동생 현룡(40.전 청와대 국장)씨를 전격 소환해 이틀 동안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그 이전에는 "정확한 대출 규모와 자금 흐름을 추적해 현룡씨와 관련된 혐의가 드러나야 조사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현룡씨가 소환되자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현룡씨의 혐의점을 포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검찰은 "현룡씨와 관련된 의혹이 증폭돼 이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한 것" 이라며 "아직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주변에선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의혹이 청와대와 현직 장관에게까지 번지자 검찰이 서둘러 종결하려는 것이 아니냐" 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것은 현룡씨의 소환 및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취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최근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 청와대로부터 질책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현룡씨가 전격 소환됐다.

검찰은 소환 사실을 감추고 검사실이 아닌 외부인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되는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현룡씨가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더욱이 검찰은 한빛은행의 고발장에 T건설사가 1백20억원을 불법 대출받은 것으로 돼있는데도 한동안 T건설을 수사선상에서 제외해 지금까지 이번 수사의 출발점이 되는 업체별 대출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거액의 대출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작은 회사인 아크월드가 왜 3백억원 이상의 거금이 필요했는지▶관악지점 신창섭 지점장이 받은 대출커미션의 총 규모는 얼마인지▶대출 과정에 장관 같은 고위 인사 등의 압력은 없었는지 등 핵심 의혹들에 대해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한빛은행에 대출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요청했으므로 조만간 의혹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朴씨 형제의 대출 보증을 거부한 신용보증기금 이운영(李運永)전 서울 영동지점장을 사직동팀이 내사했다는 사실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서울지검 동부지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지 않고 朴씨 형제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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