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큰손들 시간 쫓겨 점심은 대충 때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월가에서 하루 수백만달러 헤지펀드를 주무르는 투자가 데이빗 히킨스(28)는 거의 매일 인근 가게에서 시켜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점심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장세를 지켜보고 투자전략을 점검하는 것이다.

증시 활황으로 떼돈을 버는 월가 큰손들의 점심은 캐비어에 고급 와인을 곁들인 향연(饗宴)일 것이란 추측은 완전히 틀린 셈이다.

치열한 경쟁의식과 바쁜 일과가 뉴요커들의 점심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

뉴욕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을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을 시켜 사무실 안에서 때우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맨해튼의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뉴요커들의 푸짐한 점심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변호사들의 점심식사도 비슷하다. 대형 법률회사(로펌)일수록 변호사들이 밖에 나가 점심을 먹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비서들이 아예 식단을 짜서 매일매일 배달해준다.

이같은 현상은 금융가에도 파급되고 있다. 밖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직원들이 가급적 식사를 안에서 해결하는 은행들이 생겨나고 있다.

구내식당은 미국인의 정서나 문화에는 잘 맞지 않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최근엔 빌딩 내 구내식당 설치가 보편화하고 있다.

밖에서 식사를 해도 식사시간이 많이 줄었다.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레스토랑 '21클럽' 의 조사 결과 테이블당 평균 식사시간은 1시간15분으로 1년 전에 비해 20분 가량 줄었다.

맨해튼 내 어느 직장도 점심 시간에 일을 하라고 직원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장인으로서 성공하기 힘들다.

뉴욕 화이트 칼라들은 연봉은 높을지 모르지만 업무에서 받는 압박감 또한 큰 것이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