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DJ도 민주당 경선 투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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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당직자들이 이같은 건의를 했다고 밝혔는데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 관계자들이 전한 이유 중 하나는 "金대통령이 과연 누구를 찍었느냐" 하는 문제로 말썽이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러면 같은 이유로 金대통령은 앞으로 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나 16대 대선 때 투표하지 않겠다는 얘긴가.

어떤 선거든 대통령이 누구를 찍었느냐는 관심거리고 그것을 궁금해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유(類)의 호기심은 金대통령이 비밀선거의 원칙을 지켜 입을 닫고 있는 이상 곧 눈녹듯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 당직자는 "金대통령 입장에서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있겠느냐" 고 했다고 한다. 그 심경은 알만하다. 자신 때문에 옥고(獄苦)를 치른 후보도 있고, 비서출신도 있을 뿐 아니라, 하나같이 金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하는 후보들이다. '누군 당선되고 누군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는' 투표를 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일반 대의원들도 좋아하는 후보가 너무 많으면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 정상적인 선거라면 단독출마가 아닌 이상 낙선하는 후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반대로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며 투표하지 않는 대의원이 있을 땐 뭐라고 할 것인가.

특히 '아픈 손가락' 운운하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민주당이 金대통령의 가부장적 통제 아래 있는 사당(私黨)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재의 불투표 결정에 당내에서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음을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

총재가 상대적으로 아래 당직인 최고위원 선거에 투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민주당이 종로구의회 의원후보를 경선으로 뽑을 경우에도 청와대의 金대통령은 투표해야 마땅하다. 그게 민주주의다. 金대통령은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에 있다.

민주당은 "金대통령은 5명의 최고위원을 지명할 수 있어 굳이 투표할 이유가 없다" 고도 밝혔다. 최고위원 경선을 하면서 별도로 5명을 지명케이스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냐로 논란이 있는 마당에 '선출직 7명은 누가 되든 상관없다' 는 얘긴지, 아니면 당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 당원의 의무에서 金대통령은 면제됐다는 주장인지 알 수가 없다.

민주당 대의원이라면 바람직한 최고위원을 뽑도록 노력해야 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표하는 것이다.

'당의 단합을 위해서' 라는 설명도 들린다. 그러면 서영훈(徐英勳)대표나 金대통령의 측근, 실세들도 투표하지 말아야 당이 단합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투표를 피하기보다는 주변에서 '김심(金心)' 을 팔고 분열을 부추기는 인사들을 엄히 감시할 일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집권당으로는 처음으로 다수의 최고위원을 선거로 뽑는 행사다. 민주당이 '정당 민주화의 중요한 진전' 이라고 자평한 선거다. 총재가 외면하면 그 의미는 반감될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당대회를 스스로 '시시한 선거' 로 격하시키는 민주당을 의아해 한다. 혹시라도 레임덕을 막으려 이같이 결정했다면 차라리 선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면 선거에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이 절약됐을 것이다.

더구나 金대통령은 이미 '전당대회는 당권이나 대권과 무관하다' 고 선언한 바 있다. 부담없이 투표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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