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속보경쟁이 빚은 나스닥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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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최근 허위 보도자료 한장으로 인해 나스닥 시장의 주가가 급등락한 사건은 인터넷 시대의 언론 속보 경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투자자들의 군중 심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24일 밤(현지시간)인터넷 뉴스사인 인터넷 와이어의 야근자 앞으로 한장의 보도자료가 e-메일로 전송됐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에뮬렉스의 홍보 대리인을 사칭한 사람이 보낸 이 보도자료는 '미 증권관리위원회(SEC)가 에뮬렉스의 회계장부를 조사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인 폴 폴리노는 사임키로 했다' 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와이어사는 나스닥이 열리기 직전 이 내용을 웹사이트에 띄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블룸버그.다우존스.CBS마켓워치 등 유력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 여과없이 보도한 것이다.

미국 언론사들은 대체로 사실 확인에 철저한 편이지만 장중에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영양가 있는' 기사라는 점에서 마음이 급해져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뉴스가 퍼지면서 펀드매니저.일반 투자자를 가릴 것 없이 투매사태가 빚어졌고 에뮬렉스의 주가는 순식간에 45달러(60%)나 폭락했다.

회사측의 다급한 해명과 언론사들의 정정보도, 나스닥측의 거래중단 조치로 주가는 가까스로

전날보다 6.4% 하락한 선으로 회복됐다.

SEC는 범인이 풋 옵션을 대량 매입한 뒤 주가 하락에 따른 차익을 노려 이같은 짓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터넷 와이어의 마이클 터핀 대표는 "우리 역시 치밀한 사기극의 희생자" 라고 해명했지만 이처럼 중요한 뉴스를 e-메일 한통만 덜렁 믿고 내보냈다는 데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기 어렵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미 증권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뉴스.투자정보 사이트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초 단위의 속보 경쟁을 생명으로 여기는 사이트의 속성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투자자들로서도 스스로 판단하고 걸러서 정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물론 무책임한 언론사가 책임을 질 문제지만 정작 피해는 자신들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허위 뉴스를 퍼뜨린 뉴스 사이트에 대한 징벌, 뉴스 소스 공개, 피해 보상 등 제도적인 뒷받침도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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