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너무 친절한 내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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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연말에 며칠 가족과 여행을 갔다. 처음 가는 곳이어서 내비게이터를 켰는데 새로 생긴 펜션이라 찾을 수 없었다. 2년 동안 한 번도 업데이트를 안 한 잘못이기도 하지만 겁이 덜컥 났다. 혹시 길바닥에서 밤을 새울 걱정부터 유령 펜션에 사기를 당했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걱정은 진화한다. 주소도 안 적어왔는데 휴대전화는 불통이었다. 헤매던 중 다행히 통화가 돼 받은 주소를 내비게이터에 입력했다. 안심하고 우리 내비씨가 알려준 길을 가다 보니 아무래도 도로 표지판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는 경로와는 달랐다. 내비씨가 일러주는 길은 울퉁불퉁 좁은 산길이고, 도로표지판은 넓은 국도였다. 어느 쪽을 따를지 고민을 하다 내비씨의 말을 따랐다. 역시나 무조건 최단거리를 측정해서 알려준 너무 친절한 내비씨였다. 얼어붙은 좁은 산길을 꾸불꾸불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절대 거리는 짧았으나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도 길었고, 운전피로도는 몇 배였다.

매번 속지 말자, 소신껏 가자고 다짐하나 내비게이터에 의지하게 되는 의지박약을 한탄했다. 내비게이터는 나름 최선을 다해 최단코스로 알려주지만 그동안의 내 운전경험으로 체득한 방법과는 큰 차이가 난다. 둘 사이의 혼란은 특히 애매하게 아는 곳을 갈 때 극대화된다. 아예 모르면 기계에 의지하지만 적당히 아는 길은 소신과 기계 정보 의존 사이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특히 좀 먼 거리를 가야 할 때에는 처음에만 전체 경로를 알려주고 그다음부터는 아주 좁은 근거리를 비추는 화면만 보며 가라는 대로 가야 하니 시야가 좁아 답답해지는 기분을 매번 느낀다. 적당한 타협안으로 아는 곳까지는 소신껏 가고, 도착지 인근에서는 기계를 켜지만 가는 동안에 ‘혹시 그사이 더 좋은 길이 새로 나지 않았을까’ 하는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너무 친절한 내비씨와 주관적 소신 사이에 갈등을 하다 보니 문득 이게 꼭 인생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목표를 찍어놓고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길로 가라는 대로 가면 편하다. 그러나 이게 맞나 싶을 때 고민은 시작된다. 주관이라는 것이 1g만 있어도 완전한 의존은 불가능하다. 제시된 최단거리로 그냥 고민 없이 갈지, 직감에 의지해 돌아가고 막히더라도 가고 싶은 길을 갈지. 주관을 고집하고 싶지만 나중에 고집 피웠다가 후회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뻔하다 싶던 것들이 다 헷갈린다. 매번 다니던 길도 내비게이터를 켜고 가는 상황이 된다.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어느 쪽을 택할지 갈팡질팡하다 엉뚱한 길로 새버리기도 한다. 어쩌지?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완전히 무시하는 게 아니다. 인생이란 길을 운전할 때 기본옵션은 내 주관적 직관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쪽이 깊은 속내의 후회를 할 일이 적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제공되는 객관적 정보도 내치지 말며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는 그러기 쉽지 않다. 똥고집과 확고한 소신은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니 말이다. 둘 사이의 우선순위와 배분의 문제는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선택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현실의 삶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