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북한 교향악단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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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공연을 통해 남북은 역시 같은 조선사람이라는 사실을 가슴 뜨겁게 느꼈으며 앞으로도 작은 힘이나마 조국통일과 번영을 위해 힘껏 일할 것을 다짐했습니다.이번 공연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18일부터 6박7일간의 서울 방문을 마치고 24일 평양으로 돌아간 조선국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김병화씨가 남긴 말이다.

서울 관객들은 이번 공연에서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특히 우리 전통민요를 바탕으로 한 '그리운 강남' 같은 창작관현악곡은 높은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우리 가락으로서의 친숙함이 어우러져 호평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우리쪽에서는 민요를 관현악화 하는 것을 하찮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며 "우리도 이번 기회에 전통음악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할 것" 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남북 음악교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국내는 물론 세계언론의 이목이 집중한 것은 클래식 음악, 특히 교향악단이 갖는 특수한 정치외교적 상징성 때문이다.

닉슨의 중국 방문과 때를 같이 해 1973년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서방 교향악단으로는 최초로 베이징에서 공연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남북 문화교류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 이었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 음악계에 던진 교훈도 적잖았다.

네차례의 공연 내내 북한 연주자들에게 쏟아진 박수갈채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민족애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이 연주한 음악 자체가 준 감동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지휘자와 단원과의 일체감, 충분한 연습에서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연주, 창작음악에 대한 남다른 배려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 공연에서 한국 음악계에 남겨 준 교훈이자 과제다.

국제화 시대에 맞는 연주기량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하지만 어렵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창작음악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닐까.

이장직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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