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건설 현장 체험기 '사막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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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는 말은 한 개인 뿐 아니라 한 사회, 더 나아가 국가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아무리 소시적 생각 못하는 민족이라지만 지난 일을 되짚어보는 책임있는 기록물이 충분하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중동 건설 특수기였던 1970~198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 사막에서 14년을 보낸 사우디 건설현장 박용규 소장(62.두리전자영상 기술고문)이 쓴 체험기 '사막에는 낙타가 없다' 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사 현장은 물론 당시 정황과 주변 인물평, 당시의 미묘한 감정까지 세심하게 복원하고 있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극동건설에 다니던 저자는 76년 건설의 황금 시장 사우디아라비아에 첫발을 내딛였다.

당시 회사는 자금 압박으로 입찰 자체를 포기해야 할 판인데, 갓 서른살의 현장소장인 저자가 하도 우겨서 도로 공사 입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현장 실사 없이 도면만 보고 공사비를 산출했던 입찰이 결국 뜻을 이뤄 긴 사우디 생활이 시작됐다고 그는 기록한다.

비행기 표를 못구해 사우디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발을 동동 구르고, 현지 답사를 대충하는 등 당시 현장의 일 진행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나를 엿볼 수 있다.

직원들이 측량기를 직접 어깨에 메고 현지에 가는 모습은 지금 보면 '전설' 에 가깝다.

소박한 그의 글은 때론 소설에 버금가는 읽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사우디에서의 첫 도로 공사 당시 우물터를 발견한 일이 대표적이다. 굴착 장비를 동원해 지하 200~1, 000m까지 파들어가도 지하수를 찾기 쉽지 않았다. 저자도 번번이 실패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벌판에 앉아 있었다.

그 때 남루한 옷차림의 한 노인이 지팡이로 '우물을 파고 싶다면 이곳을 파보라' 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해서 기사에게 이 말을 전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사막 벌판에 노인은 온데간데 없었고, 노인이 가리킨 곳을 파니 30분도 지나치 않아 물기가 밴 흙이 나왔다고 한다.

현지인 말대로 알라신이 보내준 은인이었을까. 생생한 현장 기록에다 사우디 풍물까지 덤으로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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