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우주로 간 '더티 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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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중장년층에는 총잡이 '더티 해리' 로 기억될 터이지만 젊은층에는 '버드' '용서받지 못한 자' '사선에서' 등 진지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 겸 배우로 더 친숙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감독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변신한 배우로 꼽힌다.

1930년 5월 31일생이니까 올해로 만 70세. 감독으로도 은퇴를 바라볼 나이임에도 이스트우드는 올여름 할리우드 흥행전쟁에서 또다른 '사건' 을 연출하고 있다.

과감히 SF영화에 도전, 개봉 3주째 흥행 3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트우드가 제작.연출.주연한 '우주의 카우보이들' (원제 Space Cowboys)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조합한 제목이 암시하듯 기존의 여름 블록버스터 SF영화와는 좀 다르다.

이스트우드가 SF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의외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4명의 남자주인공 중 가장 '어린' 배우가 올해 54세인 토미 리 존스라는 사실. 85년 '코쿤' 이래 처음으로 '노인' 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SF영화가 나온 셈이다.

이스트우드와 존스, 도널드 서덜랜드(65)와 제임스 가너(72) 등 4명의 노장 배우들은 젊은 시절에 못다 이룬 우주비행의 꿈을 펼치는 은퇴한 파일럿으로 출연한다.

이들은 한때 미공군 최고의 파일럿으로 첫 달나라 여행을 준비했으나 우주탐사가 미항공우주국(NASA) 소관으로 넘어가면서 침팬지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그로부터 40년 후. NASA의 첨단과학으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소련의 통신위성이 궤도를 이탈,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 위성이 워낙 낡아 어떤 컴퓨터로도 유도장치를 작동시킬 수 없다.

위성의 유도장치가 그 옛날 이스트우드가 디자인한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안 NASA는 이스트우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는 자신과 옛동료 3명이 우주로 나가 직접 수리한다는 조건으로 허락한다.

이 영화는 나이를 소재로 한 코믹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스트우드는 지금까지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이 보여준 특색을 잃지 않는다.

카우보이가 됐건, 경호원이 됐건, 우주비행사가 됐건 은퇴한 노장이 사회의 악을 바로잡는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는 것. '우주의 카우보이' 에서 컴퓨터는 무용지물이고 오로지 노인 비행사들의 수동조작과 경륜이 임무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스펙터클보다 스토리에 중점을 둬 영화 시작 80여분이 지나도록 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소련위성에 진입하면서 시작되는 특수효과 액션은 서스펜스와 긴박감을 부른다.

나이 70에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려는 정신,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집념, 나이를 의식하지 하지 않는 여유…. 무엇보다도 개구쟁이 소년처럼 무중력 상태를 즐기는 이스트우드의 장난기가 흐뭇하다.

로스앤젤레스〓이남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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