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재영씨 7년만에 개인전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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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화면 아래쪽에는 초로의 남녀가 부둥켜 안고있다. 오래 헤어졌던 오누이같다. 주변에는 풍각쟁이들이 장구.북.대금.소금.아쟁을 연주하고 있다. 분무기로 뿌린 듯한 먹물 흔적이 군데군데 배어있어 옛 그림같다.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빌려온 사람들이다. 보라색으로 그려진 남녀의 몸짓은 간절하다. 만날 수 없다고 체념하고, 그리움을 죽여가며 살아왔던 세월이 느껴진다. 다시 보니 할머니와 중년의 아들같기도 하다. 남자의 어깨쪽에 올려진 여인의 얼굴에는 어렵게 살아온 삶이 배어나온다.

23일~29일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열리는 최재영씨의 '포옹' 연작의 하나다. 이번 전시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가 93년 이래 7년만에 여는 국내 개인전.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포옹' '조화' 등의 연작을 통해 보여준다.

포옹하는 남녀의 사연, 혼자 있는 남자의 고독 등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런던의 광장과 건물이 배경이 되기도 하고 김홍도에게서 차용한 국악연주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내 그림은 두가지 형태의 포옹을 다룬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갈망에 대한 포옹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에 의해 초래된 한국의 많은 이산가족들의 좌절을 나타내는 포옹이다." 고 작가는 말한다.

그림들은 갈망.사랑.고독.좌절의 감정들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인간의 감성이 지리적 장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서 형성됨을 보여준다.

팔다리가 없는 남녀의 누드를 그린 '조화' 연작도 눈에 띈다. 종이의 표면을 벗겨내는 스크래치 기법을 사용, 입체적인 느낌과 함께 에칭이나 목판화같은 환상적 분위기를 냈다. 최씨는 조선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94년도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윔블던 미술대학에서 드로잉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올해 미국 밀워키의 리버 레블 화랑에서, 98년 캠브리지 시티센터에서 각각 초대전을 열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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