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노천명 '망향'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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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언제든 가리라

마지막엔 돌아가리라

목화꽃이 좋은 내고향으로-

아이들이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둥굴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국채 장구채 마주재 기룩이

도라지 체니 곰방대 곰취 참두릅 개두릅을 뜯는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 노천명(1912~57) '망향' 중

평화롭구나. 시인은 어릴 적 고향을, 그 낱낱의 그림을 풀이름들과 함께 가슴에 눌러 담고 "언제든 가리라" 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휴전선 바로 윗녘 황해도 장연이면 그리 먼 곳도 아닌데, 한 두 달 아니 한 두 해만 기다리면 돌아갈 것도 같은데, 노천명 시인은 그렇게는 안될 줄 알았던가. 일찍 세상을 떠나 고향가는 마지막 길을 가고 말았다. 지금쯤 동네 소녀들과 둥굴레산 오르며 도라지, 곰취…, 바구니 가득 뜯고 있는지.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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