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의 진정한 화해를 향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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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 아침 평양을 떠난 북한의 고려항공기가 김포공항에 와서 북쪽 이산가족 1백명을 내려놓고 다시 북으로 갈 남측 이산가족 1백명을 태우고 올라간다.

'얼굴은 알아볼 수 있을지…' . 상봉의 기대에 가슴 설렜던 이산가족들은 이제 부모.처자.형제와 만나 헤어짐의 아픔과 서러웠던 사연들을 털어 놓음으로써 혈연의 정을 다시 잇게 됐다.

이산가족의 재회는 처절했던 전쟁에 의한 분단의 아픔을 우리 손으로 감싸는 화해의 몸짓이자 이념과 체제의 분열을 넘어 민족통합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커다란 걸음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이산가족의 만남이 확대돼야 하며 상봉의 장소도 서울.평양으로만 제한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과 만나 9, 10월에도 상봉 기회를 주고 내년부터는 고향 방문도 허용할 것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수십년 만에 다시 만나는데 거대한 체육관에서 무슨 단체경기를 치르듯이 한다는 것은 그들의 처지와 감정을 너무도 고려하지 않은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상봉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산가족들로서는 그들의 고향 마을을 찾아보고 가족뿐 아니라 친지와 친구.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상봉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 방문은 그동안 몇차례 거론됐지만 북측이 거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金위원장의 발언은 이제 모든 실상을 다 아는 판에 굳이 고향 방문을 못하게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대단히 진취적인 발상이며 이산가족 문제에 가장 핵심적인 해답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몇차례 교류를 통해 우리는 북녘에 결코 '뿔 달린 사람들' 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남측도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왔다.

통일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초석은 연방제니 연합제니 하는 통일방안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을 통한 상호이해와 신뢰의 쌓임이다.

따라서 상봉에서 고향 방문으로, 그리고 다시 남북간의 자유왕래로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작은 통일' 일 수 있는 것이다.

金위원장의 발언은 남북교류에 대한 진정과 의욕을 나타낸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이번 언론사 사장단과의 대화에서 나타난 것으로는 당장 전투적인 노동당 강령을 고치기는 어려우며 비록 경제적인 이유라고는 하지만 미사일 개발도 계속할 뜻을 비춘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산가족의 상봉으로 나타나는 해빙의 기류가 남북간의 진정한 화해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에서 정치성을 배제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남북간의 평화체제 구축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 당국은 고위급 회담을 통해 조속히 상호공존을 위한 평화체제 문제의 협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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