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여성작가 박영애씨 '비상의 끝'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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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탄 야' 로 1981년 뒤늦게 등단한 중진 여성작가 박영애씨가 20년간 써 모았던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 '비상의 끝' (늘푸른 소나무)을 내놓았다.

7개의 단편과 중편 하나,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시드니 셸던과의 인터뷰 '작가는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는가' 를 덧붙였다.

중진이지만 아직도 여전한 글쓰기에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은 다양한 소재다.

최근작인 표제작의 주인공은 부도덕한 정치인을 사랑한 다방 여종업원이고, '달아난 손짓' 은 게이들의 세계를 그렸다.

특수 요양시설에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늘진 얘기도 등장하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여성들의 삶도 빠지지 않는다.

작가가 이런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파헤쳐져야 할 진실' 이다.

"진실은 두렵기에 모두 기만당하기를 바란다" 는 작가는 "결코 진실 아닌 것이 위안이 될 수는 없기에 진실을 찾고자 노력했다" 고 말한다.

진실은 중진이 지닌 안목과 감각으로 뽑아져 나온다.

'새는 날지 못한다' 는 어쩔 수 없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가는 중년 여성을 담담히 그렸다.

남편이 사고로 숨진 뒤 남겨진 아내의 허전한 마음 속을 차지한 사람은 사고 뒷수습을 맡았던 남편 회사 사장. 멀쩡한 가정을 가진 남자와의 관계는 결별을 예고한 비극일 수밖에 없고, 무심히 헤어지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돌아다 보니 그 사이 훌쩍 커버린 딸아이마저 떠나버린다.

남편의 죽음 이후 매달렸던 두 가지 사랑이 한꺼번에 사라진 뒤 주인공은 비로소 '진실' 을 깨닫는다.

'비상의 끝' 에서 다방 여종업원인 주인공이 깨닫는 진실 역시 세상의 만고풍상을 겪은 끝에 찾아오는 자각이다.

기만 속에서 행복하고 진실 앞에서 괴로운 삶이지만 작가는 진실과의 대면을 강요하고 있다.

작가의 메시지는 무겁지만 문체는 짧은 대화와 늘어지지 않는 상황설명으로 발빠르다.

압축된 대화이기에 현장감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말들인데 활자로 읽다보면 평소 말을 하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의미들을 찾게 된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소설을 너무 쉽게들 생각한다" 고 걱정한다.

어차피 세상 흐름에 따라 짧아지고 가벼워져야 할 운명의 문학이지만 '진실' 이라는 한가지만은 고집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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