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생가 사찰로 복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

94년 입적한 우리 시대의 큰 스님 성철 선사의 생가는 그가 남긴 법어처럼 산과 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자리잡고 있다.

성철 스님은 이 곳에서 25세까지 결혼하고 농사지으며 평범하게 살았다. 평소 서양철학서를 탐독하던 그는 한 탁발승이 푸짐한 시주에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건네준 '증도가(證道歌)' 란 책을 읽은 뒤 "캄캄한 밤하늘에서 태양을 만난 듯한" 깨달음을 얻고 바로 출가했다.

이같은 첫 깨달음을 얻은 생가를 성철 스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산청군이 복원해 기념관으로 꾸미고 있다.

생가와 관련 건물은 이미 완공돼 일반에 공개됐으며, 주변경관을 단장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는 10월에 정식으로 문을 연다. 지리산에서 발원해 진주로 흘러가는 남강변 3천여평의 공간에 5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사업비 중 12억원은 정부예산(교부세)이며, 나머지 38억원은 성철 스님의 제자와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모금했다.

생가는 모두 3채의 한옥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유품전시실로 사용된다. 안채는 성철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일반인들이 경배하는 공간이며, 사랑채는 외부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사용된다.

유품전시실에는 성철 스님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해인사 백련암에 보관돼 있는 스님의 가사.장삼.지팡이.육필원고 등 유품을 옮겨와 전시할 계획이다.

생가를 복원한 터에는 새로운 사찰이 함께 들어선다. 대웅전과 참선을 할 수 있는 선방, 승려들이 머물 수 있는 요사채 등 건물은 모두 만들어졌다. 사찰은 성철 스님의 딸인 불필 스님이 이끌고 있는 문도회에서 관리할 예정이다.

성철 스님의 제자로 생가복원 사업을 주도해온 원택 스님은 "큰 스님이 입적하고 그 공덕이 널리 알려지면서 생가터에 관심을 가지는 신도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신도들이 찾아간 생가터에 생가가 거의 다 허물어져 아쉬움이 많았다. 마침 산청군에서도 지역 문화공간으로 만들려는 생각이 있다고 해 5년전 제자들과 군이 함께 생가를 기념관으로 복원키로 했다" 고 말했다.

산청군 관계자는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불교의 뿌리가 깊은 지역인데다 성철 스님 생가 근처에 '문익점 면화시배지' 나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어 연계해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생가를 복원키로 했다" 고 말했다.

'문익점 면화시배지' 는 원나라에서 몰래 면화씨를 들여왔던 고려말 학자 문익점이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며, 남명 선생은 영남의 거유(巨儒)로 그의 제자들이 지은 덕천서원과 세심정 등이 인근에 남아 있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