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벗기고 보자' 경쟁 방송만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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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반쯤 드러난 앞가슴. 허벅지까지 트인 치마. SBS 토크쇼 '김혜수 플러스 유' 가 1백회 특집으로 그동안 출연했던 신세대 우상 등을 총출동시킨다고 해 중3 아들과 함께 시청했던 2일 밤. 카메라는 글래머 미녀 MC 김혜수의 노출을 위 아래로 훑어가며 화면 가득히 내보내고 있었다.

이날 낮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언론사 문화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TV의 음란.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회적으로 인내할 수 있는 수위를 넘었다" 며 "장관직을 걸고 몰아내겠다" 는 말을 되풀이 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당국의 이런 의지는 방송의 독립성을 해친다든지, 정권 후반기를 맞는 무슨 포석 아니냐 등 우려와 의문도 낳았다.

그러다 이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선정성의 기준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는 힘들다.

여고생과 변태적 애정행각을 벌이는 '거짓말' 을 극장에서 TV로 옮긴다면? 물론 사회적으로 인내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 보면 괜찮지만 아들 딸과 같이 보아 '참을 수 없는 낯뜨거움' 이 박장관이 이날 밝힌 선정성 규제의 기준인 것 같다. 이 낯뜨거움을 공중파 방송은 이미 넘어섰다는 판단이다. 강한 의지로 몰아붙일 TV에서의 선정 퇴출이 한동안 문화계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다.

문화의 집하장이자 출하장인 TV에서의 선정성 퇴출이 당국의 의지대로 된다면 문화계 전반은 구조조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닌 척하면서, 혹은 드러내놓고 본격.대중 문화계 모두 가속을 붙이며 선정성을 팔아온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경철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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