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비 흥청망청] "연구비 타려면 인맥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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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맥과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연구자금만 따내면 평가는 걱정할 필요 없다.'

대학교수들이 고백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적표는 말 그대로 '기대 이하' 였다. 이는 본지가 단독 입수한 사단법인 대학산업기술지원단(UNITEF)의 이공계 교수 4백68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다.

이 자료는 국가개발연구사업의 실상을 밝히자는 목적에서 1998년 처음 실시돼 그동안 내부 자료로 활용돼 왔다.

교수들은 우선 연구개발사업의 정책일관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95%가 넘는 4백42명이 '없거나 그저 그렇다' 고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과제 선정도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59.4%로 나타나 공정하다(9.7%)는 의견의 6배가 넘었다.그 이유에 대해 5명 중 4명이 사업이 미리 내정돼 있거나 이름만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입을 모았다.

과제선정을 위해 '인맥' 동원이 필요하냐는 물음에는 4백63명 중 3백25명(71%)이 '그렇다' 고 답했다.

이에 반해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의견은 단 11%. 평가 및 사후관리 시스템의 부실도 途?지적됐다. 특히 연구과제에 참여했던 교수들 중 89%가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해 한번도 지적당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또 95%의 교수들이 연구가 끝난 뒤 주관 부처로부터 한번도 상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교수들은 또 연구과제의 중간 심사과정에 대해서도 공정하지 않다(57%)는 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 이유로는 심사의 ▶비전문성(38%)▶비공정성(35%)▶비효율성(21%)등이 꼽혔다.

그밖에 각각 22%, 23%의 교수들이 과제선정 때 전혀 관계없는 연구자 이름을 몰래 넣거나 이름만 빌려준 적이 있다고 털어놔 허위 보고서 제출과 연구비 부풀리기 관행이 폭넓게 퍼져있음을 보여줬다.

또 교수들은 연구비가 깎일 것을 예상해 필요 이상으로 연구비를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64%가 '그렇다' 라고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대학산업기술지원단측은 정부 부처 실무자들이나 연구원들의 인식 부족으로 대부분의 연구가 성공판정을 받는 현실이 과학기술 발전에 큰 저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연구개발 사업을 개선하고 평가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백서를 작성하고, 평가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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