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여성 손끝 '정말 매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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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바둑계의 여성 기사들이 심상치 않다. 여성 최강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이 이창호9단과 조훈현9단을 꺾고 국수가 된 이후 한국의 젊은 여성기사들이 부쩍 힘을 내며 남성 강자들을 혼내주고 있다.

최근 벌어진 농심신라면배와 삼성화재배 예선에서만 보더라도 막강해진 여성파워를 실감할 수 있다.

농심배에서 막 프로가 된 이다혜 초단은 장수영9단과 격전을 벌인 끝에 아슬아슬한 반집승. 권효진2단은 최규병9단을 물리쳤고 하호정 초단은 세계대회 4강을 자랑하는 김영환5단을 격파했다.

조혜연2단은 조훈현9단을 꺾으며 신바람을 내던 신예강호 박영훈 초단에게 쓴맛을 안겨줬고 황염3단 역시 신진 강호 안영길3단을 제압했다.

삼성화재배 예선에선 새내기 김혜민 초단이 윤기현9단을 제압했고 윤영선2단은 중국 6소룡의 한사람인 사오웨이강(邵偉剛)9단을 꺾어 기다리고 있던 백성호9단을 기쁘게 해줬다.

시.도대항전에서도 프로가 없는 제주도 팀으로 출전한 루이나이웨이9단과 황염3단은 박승문4단과 김동면6단을 연파해 무서운 외인부대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몇년 전만 해도 여성기사들은 토너먼트의 꽃에 불과했다. 어쩌다 은퇴를 앞둔 노장들에게 한판 건지는 게 고작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중견은 물론 펄펄 나는 신진 강호들조차 여성들을 만나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 됐다.

유망주 박지은2단(여류명인)이 조훈현9단이나 서봉수9단 같은 강자들을 격파해 화제를 낳은 적은 있지만 많은 여성들이 지금처럼 무더기로 강해지는 현상은 처음이다.

10대의 초단.2단들이 특히 골치 아픈 존재여서 이들에 패한 9단들은 얼굴을 붉힌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어이없어 하던 남성 강자들이 이젠 여성기사들의 실력을 고개 숙여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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