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천하무적 홍대리' 작가 홍윤표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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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어, 대리가 아니라 과장이시네요. "

인사를 나눈 뒤 명함을 살펴보다 농담섞인 한마디를 건네자 쑥스러운 듯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홍과장으로 승진한지 한 2년 됐어요. 조그마한 회사라서 과장이라고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하. "

최근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그린 만화 '천하무적 홍대리' 두번째 권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가 홍윤표(33)씨는 그 자신이 올해로 8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에서 일하다 3년전 지금의 프랑스계 회사로 옮겼다.

"우라늄을 수입.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주 고객이지요. 우라늄이나 원자력발전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재료를 판매하는 게 제 일입니다. "

점심시간 조금 지나 신문사 편집국으로 찾아온 그는 면바지에 티셔츠와 청색 재킷,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어제 술자리 접대가 있었는데 늦게까지 대단했거든요. 아침에 출근을 못했고 인터뷰 끝나는 대로 출근할 작정입니다. "

아마 자동차 속에 구두와 양말을 벗어둔 것이리라 추측했지만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아니면 슬리퍼 차림 그대로 출근해서 모른 척 앉아있다가 부장에게 들켜 경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천하무적 홍대리' 처럼. 평범한 직장인이던 홍씨가 한 문화센터 만화 강좌에 등록한 것은 96년초.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정말 작가가 될 것라고는 생각 안했고요. 어쨌든 만화를 그리고 싶어 등록한 거죠. "

홍씨는 이후 1년동안 밤마다 만화와 씨름했다. 무심코 결재서류에 만화를 그렸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내 전자게시판에 띄운 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97년부터 월간 '작은책' 과 독립만화 동인지 '화끈' 등에 연재를 시작했다.

최근엔 참여연대 조세팀과 함께 한국의 조세 체계의 문제점을 정밀 진단한 '홍대리의 세금이야기' 라는 만화를 펴내기도 했다.

'천하무적 홍대리' 의 인기 비결은 회사 생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포착하되, 가볍게, 긍정적으로, 밝게 그리는 데 있다.

어차피 힘든 회사 이야기를 꼭 무겁게 전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천하무적 홍대리' 는 같은 일상 만화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시마 과장' 같은 일본 만화와 차별화된다.

"조만간 전업작가로 나설 작정입니다. SF물 등 그리고 싶은 만화가 많아요. "

" '천하무적 홍대리' 는 평생 그릴 작정" 이라는 홍씨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홍대리는 계속 대리로 남을 것" 이라며 웃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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