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 차기카드 기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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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차기 대선 후보와 관련해 현재 당내에 어떤 구상이나 논의도 없다. " (민주당 박병석 대변인)

"차기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언급대로 2002년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선택할 것이다."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

청와대.민주당은 21일 8.30 전당대회를 앞두고 차기 대선 후보를 둘러싼 '제3의 인물론' 이 퍼지자 이렇게 덮으려 했다.

제3의 인물론은 당내 차기 후보 주자들(이인제.한화갑.김근태.노무현)로는 다음 대선이 어려운 만큼 당 밖의 다른 쪽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제3의 인물이 누구인지 실체가 없다. 고위 당직자는 "새 인물의 등장을 바라는 일종의 상황론" 이라면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맞붙을 만한 마땅한 차기 후보감을 갖고 있지 못한 여권의 고민을 반영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청와대와 민주당에선 차기 문제와 관련한 얘기들이 나오면 즉각 반응이 나오고 미묘한 파문이 뒤따랐다.

지난달 초에는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울산 동)의원 영입설이 나올 당시 당내에선 차기 구도와 연관시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잠재적 카드인 고건(高建)서울시장의 움직임에 당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金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국정운영 구상을 헝클어뜨려선 안된다는 의식이 먼저 깔려 있다.

金대통령은 "이번 전당대회는 당권.대권과 관계가 없다" 고 강조해 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차기 후보들을 경쟁구도로 관리할 것" 이라고 말했다. 차기문제는 거론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선 "차기 문제를 둘러싼 토론 풍토가 빈약하다" 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면 당내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이를 막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니 엉뚱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출처도 불분명한 제3의 인물논쟁이 그런 경우다.

차기 문제에 대한 적정 수준의 논의 창구를 열어 주는 것이 그런 부작용과 파문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양수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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