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화 바꾸자] 이익단체 갈등 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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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일 오후 7시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 보건복지부의 약사법 개정의견을 받아 든 전용원(田瑢源.한나라당.구리)위원장은 "이번 국회에서 처리될 약사법 개정안은 정부안" 이란 점을 누차 강조했다.

田위원장이 거듭 '정부안' 임을 강조하자 복지부 관계자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것" 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지난달 2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영수회담에서 약사법을 고치기로 한 뒤 보건복지위에 구성된 의약분업대책 소위를 본격 가동했던 정치권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안' 뒤에 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집단이기주의가 분출하지만 민의 수렴기관이라는 국회는 이익집단들간의 조정과 중재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 정부에 떠넘기기〓 "국회가 창피하지도 않나. 왜 정부에 떠넘기나. " "애당초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 아닌가. "

지난 5일 의약분업대책 소위에서 '자체 안을 마련할 것인가' 를 놓고 의원들간에 오간 논쟁이다. 결국 회의는 차흥봉(車興奉)보건복지부장관에게 약사법 개정안을 '7일까지 내라' 는 결론을 내렸다.

복지위 소위는 이처럼 자체 안 만들기를 포기하고 내내 정부만 다그쳤다. 7일 회의가 다시 열렸지만 정부가 안을 내놓지 않자 소위는 10일까지 제출하라고 다시 독촉했다.

소위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 법을 고쳐도 의사.약사쪽에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아는 의원들이 앞장서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소위 내에 팽배했다" 고 귀띔했다.

결국 소위의 독촉에 시달린 복지부는 13일 8쪽짜리 개정의견을 제출했다.

◇ 회의를 공개하지 않는 소위〓16대 국회 들어 바뀐 국회법은 제57조 제5항에서 소위원회 회의 공개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는 그간 일곱차례에 걸친 회의를 대부분 비공개로 운영했다. "민감한 사안이 많아 얘기가 새나가면 합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는 게 표면적인 이유. 반면 한 의원은 "회의를 공개할 경우 내가 약사편인지, 의사편인지를 만천하에 알리는 셈인데 선거를 치러야 할 입장에서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고 토로했다.

이러다 보니 이익단체간의 이해관계 조정과 중재라는 본래 역할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소위는 25일간의 활동기간 중 의사협회.약사회 등과 함께하는 비공개회의를 단 한차례 열었을 뿐 공개적인 공청회 개최는 엄두조차 못냈다.

정치개혁시민연대 김석수(金石洙)사무처장은 14일 소위활동 결과와 관련해 "한마디로 이익집단간의 갈등 조정기능을 담당해야 할 국회가 입법권을 스스로 반납한 셈" 이라고 비난했다.

박승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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