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센터에 주민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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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민들의 자치활동 공간인 주민자치센터가 겉돌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범 운영중인 주민자치센터는 대구에만 30곳. 기존 동사무소의 기능을 축소해 여유공간에 만든 것이지만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는 데다 예산.홍보 부족으로 무용지물이 돼가고 있다.

정부는 오는 9월 전국의 동사무소를 모두 주민자치센터로 바꿀 계획이다. 대구시도 곧 61억여원을 들여 나머지 99개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한다.

◇ 주민없는 주민자치센터〓북구 고성동 자치센터 2층 취미교실. 아담한 10평짜리 강의실에선 매주 월.수요일 서예교실이 열린다.

하지만 참석자는 고작 3~4명뿐. 개점휴업 상태다. 노인공동작업장은 6개월만인 지난 4월말 일거리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북구 침산2동 자치센터의 꽃꽂이교실과 서예교실도 수강생은 각각 3~4명에 불과하다. 동구 불로.봉무동 자치센터의 도서대여실도 학생.주부 등 하루 10여명이 들러 책을 빌려갈 뿐이다. 주민들이 모이도록 자치센터마다 만들어둔 '사랑방' 은 이용자가 한명도 없다.

침산2동 관계자는 "주민들에 일일이 전화해 참여를 호소해야 할 정도" 라며 답답해 했다.

◇ 눈길끄는 프로그램 없다〓대구지역 30개 시범 자치센터 모두 사랑방.헬스장.서예교실 등 비슷비슷한 시설을 만들거나 강좌를 열고 있다. "꼭 가봐야겠다" 는 생각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예산부족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꽃꽂이강좌나 유명강사 초청강연 등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고성동 최충부(崔忠夫)동장은 "빠르게 변하는 세태를 반영해 주민들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그 중에서 좀 낫다는 헬스장은 인근 헬스클럽 주인들의 민원에 부닥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북구 고성동 태평헬스클럽 주인 김용규(金容圭.49)씨는 "자치센터에 헬스장이 생기면서 수십명의 고객을 빼앗겼다" 며 "관공서가 민간의 일을 빼앗는다" 고 말했다.

오는 9월 대구시내 모든 자치센터에 컴퓨터교실이 생길 경우 컴퓨터학원들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 문제점〓정부가 시범 자치센터에 시설비는 지급했지만 관리비는 지원하지 않아 운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시범 자치센터의 연간 운영비는 70만~1백만원. 이런 탓에 일부 자치센터는 헬스장에 샤워시설을 하지 못해 주민들이 이용을 꺼리고 있다.

도서실의 경우 책을 추가로 구입할 도서비도 없다. 또 취미교실의 강사들에겐 교통비조차 지급하지 못해 '강사난' 을 겪을 우려마저 높다.

정기환.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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