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타협의 주역은 고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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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시장(市場)의 압박이 있었기에 정부와 노조 모두 판을 깨지 않고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었다." 노사정위원인 박훤구 김&장법률사무소 고문의 평가다.

금융노조와 정부는 지난 11일 저녁 대타협을 통해 사상 초유의 은행 총파업을 하루만에 끝내는데 성공했다. 노.정(勞.政)양측은 타결 직후 양쪽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게임' 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대타협의 막후에는 노.정 양측을 강력히 압박한 '시장의 힘' 이 있었다. 시장이야말로 7.11 대타협의 진정한 승자라는 것이다.

정부는 노조원들의 파업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파업이 계속돼 우량은행으로 자금이 옮겨가면 파업은행이 붕괴위기를 맞을 수 있는데, 이것은 정부로서도 대응이 어려운 상황" 이라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에서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금융노조가 파업선언 이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도 바로 예금 이동 등 시장 관련 보도였다.

노조측은 공식적으로는 "정부가 기관들의 예금을 이동시키고, 언론이 이를 부풀렸다" 고 비난했다.

그러나 파업 불참 은행과 참여 은행간의 차별화가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노조원의 이탈을 크게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저런 통계수치를 떠나 파업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고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기전자업체 D사의 金모 사장은 "S은행이 너무 깐깐하게 굴어 거래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막상 거래 은행이 파업을 한다니 당장 필요한 돈을 옮겨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고 말했다.

파업 당일 '파업철회' 를 선언한 은행의 노조관계자는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을 계속했다가는 우리의 직장이 아예 없어질 수 있다는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의 우려를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고 털어놨다.

신영증권 장득수 조사부장은 "이번 파업과정에서 정부나 은행.노조 모두 시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을 것" 이라며 "이번 교훈을 2차 구조조정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 이라고 밝혔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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