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합의 속을 들여다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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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정(勞.政)양측이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던 쟁점은 크게 네 가지였다.

이중 금융지주회사법 제정과 예금부분보호제 등 금융개혁 관련 부분은 노조측이 물러서 정부 입장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대신 러시아 경협차관 등 은행부실 문제를 해결해주고, 총리훈령으로 관치금융 재발방지를 약속함으로써 노조의 명분을 살려줬다.

◇ 금융지주회사 도입과 고용보장〓정부 계획대로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키로 합의했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가 은행의 대형화.겸업화를 돕기 위한 제도로, 선진 각국에서도 잇따라 도입했다는 점을 집중 설득했다.

그동안 노조가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반대한 것은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을 통합해 인력과 조직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란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지주회사 아래에 통합되는 은행의 기준을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10% 이상인 은행으로 국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쌓인 부실을 털어내면 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10%에 못미치는 한빛.조흥은행 등에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해서라도 10% 이상으로 맞춰준 뒤 지주회사를 통한 통합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통합되는 은행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노조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고용문제는 개별 은행의 내부 문제라는 점을 들어 노사간의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하는 정도로 선을 그었다.

◇ 관치금융 청산〓노조가 요구한 관치금융 청산 특별법 제정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 대신 정부는 총리훈령 형식으로 관치금융의 소지가 없도록 금융정책을 투명하게 시행키로 했다. 그동안 어느 정도 관치금융의 소지가 있었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면서 노조의 입장을 살려준 셈이다.

노조는 그동안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는 고질적인 관치금융을 뿌리뽑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런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데다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은 금융부실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었다는 정부의 입장이 워낙 완강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 은행 부실 해소〓정부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노조는 은행들이 부실해진 근본 원인이 관치금융에 있었던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해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러시아에 제공했다 떼일 위험에 처한 경협차관 13억달러나, 부실 종금사에 지원했다가 예금보험공사 대출금으로 전환된 4조원 등을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어느 정도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히고 법과 절차에 따라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 예금자부분보호제도 시행〓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에 합의했다.

이 제도는 금융개혁의 핵심사항으로 정부의 시행 입장이 워낙 완강했다.

노조는 금융시장이 아직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금부분보호제가 시행되면 시장에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논리로 3년 정도 연기하거나 보호한도를 이미 예정한 2천만원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가 국제통화기금(IMF)과도 이미 합의해 마음대로 연기할 수 없다고 버텼다.

예금부분보호제를 연기하면 비우량은행들이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예금을 무리하게 끌어들일 것이고, 이에 따라 부실이 생기면 결국 공적자금으로 다시 막아줘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정부의 이런 논리를 인정한 노조는 급격한 예금이탈을 막기 위해 예금보장한도를 높여달라는 요구로 맞섰다.

양측은 결국 예금부분보호제는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되, 예금 규모가 커지고 물가가 오른 점 등을 감안해 보장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김광기.신예리.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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