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함성주 지음
월간말, 279쪽, 9000원

“부엌. 어머니의 하루가 시작되는 곳이었고 마무리되는 곳이었습니다.”

저자 함성주씨는 이제는 사라져 버린 곳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름을 부른다. 난방과 취사를 함께 하던 재래식 부엌은 보일러실로, 싱크대로 해체돼 공간의 본디 의미를 잃었다. 이맛독(부뚜막)·아궁이·비땅(부지깽이)과 함께 잊혀져 가는 부엌이란 옛 공간에서 그는 유년 시절의 어머니를 불러낸다. 잊혀진 곳에서 잊을 수 없는 이를 부르는 사모곡(思母曲)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저자 함씨의 고향은 “어지간한 크기의 지도에는 이름 석 자도 적어 넣을 수 없는 작은 섬”이다.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의 부속섬인 재원도(在遠島). 이름 그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으로 “넉넉하게 셈해도 오십여 집이 넘지 않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섬에는 1980년대 초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이곳에서 71년생인 저자는 도회지의 동년배들이 경험도, 상상도 못할 아득한 시절을 살았다. 서른 세 살의 함씨가 세밀한 기억력으로 촉촉하게 재현한 ‘유년의 재구성’이 12편의 에세이에 담겼다. 요즘 30대의 유년답지 않다. 너무나 거짓말 같아 무척이나 ‘소설적’이다.

“밥상문(방에서 부엌으로 난 작은 문)을 열고 찡그린 얼굴로 억지 눈을 뜨고 내다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얼굴은 감빛으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언제 일어나셨는지 비땅으로 땔나무를 이리저리 들춰가며 밥을 하고 계셨지요.”

가난한 어부의 아내, 홀어미의 며느리, 네 아들의 엄마로서 함씨의 어머니는 분주한 살림에 쫓겨 끼니 때도 늘 부뚜막 앞에 나앉았다. 김치 하나와 밥 한 그릇에 숟가락 하나만 달랑 쥔 채 식사하던 적이 많았다고.

“김장김치를 먹기 편한 크기로 찢어주시느라 젓가락은 아예 쥐지도 않으셨습니다. 김치 찢고 난 손가락을 ‘쪽’ 소리나게 빨아 드시는 것을 반찬으로 삼으셨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와 떨어져 목포로 나와 유학 생활을 시작한 함씨는 예순의 나이에 벌써 기력이 쇠해진 어머니의 쓸쓸한 등을 바라보고 있다. 물도 귀해 목욕이라곤 추석과 설날 두 차례만 했던 섬마을 시절. 미지근한 물에 채 불리지도 못한 때를 ‘이태리 타월’로 피가 나도록 빡빡 문질러 아들을 목욕시키셨던 어머니. 정작 당신의 등은 누가 밀어드렸을까.

저자는 현재 전남 영광군 홍농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은 함씨가 어머니께 드리는 ‘깜짝 추석 선물’이다. 직접 들고가 놀라게 해드리려고 책이 출간된 뒤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