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파업 1차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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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대를 모았던 노.정 1차 협상은 4시간30분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일단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했다.

그러나 노.정은 9일 2차 협상을 갖기로 합의, 막판 대타협의 여지를 남겨뒀다. 협상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으나 노조는 그간의 쟁점들을 정리해 정부측에 전달했으며, 특히 관치금융 철폐 등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강행 등은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은행 부실청소 지원▶관치금융 일소 등은 노조측 요구를 일부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노조, 명분쌓기 주력〓노조는 이날 관치금융 철폐를 최우선 요구사항으로 들고 나왔다.

정부나 감독당국의 구두.전화지시 금지를 법으로 명문화하고 처벌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유보도 계속 요구했지만 상당부분 수위를 낮췄다.

우량은행들의 이탈이 계속되고 시장의 움직임이 파업을 주도하는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쟁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노조는 또 내년 실시 예정인 예금 부분보장제도를 3년간 연기하라고 처음으로 공식 요구했다. 이 부분은 우량.비우량 은행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금융노조 집행부가 쟁점화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대목이다. 부분보장제가 전면실시되면 비우량은행 자금이 우량은행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이를 쟁점화한 것은 우량은행의 이탈을 기정사실화하고 비우량은행 중심의 파업강행으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 정부, 줄 것이 별로 없다〓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은행 인원감축과 관련, "퇴직자들에게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주거나 남은 근로자들이 2~3년 동안 월급을 줄여 퇴직기금을 조성해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 하익중 정책부장은 "부실의 근본원인인 관치금융 철폐와 금융지주회사제도 유보가 노조의 파업이유" 라면서 "정부가 은행원들이 단순히 고용문제 때문에 파업을 하는 것처럼 여론을 이끌기 위해 이런 처방을 들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고 반박했다.

노조측은 이날 요구한 3대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는 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금융지주회사법 등 노조요구가 대부분 경제정책과 관련돼 쟁의대상이 아닌 만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을 철회할 명분을 만들어주기가 쉽지 않아 고심" 이라고 말했다.

◇ 2차 협상전망〓이날 협상 후 이용근 위원장은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며 "9일 협상에는 보다 진전된 내용이 나오지 않겠느냐" 며 막판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은 "우리의 원칙을 그대로 전달했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고만 짧게 응수했다.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은 공식브리핑에서 "(이날 협상은)상당한 의미가 있다" 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진전이 있었느냐" 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우량은행과 지방은행의 이탈이 가속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노조의 운신 폭이 갈수록 줄고 있다" 며 "이런 추세라면 9일 대타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 전망했다'.

이정재.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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