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업체 부도낸 아파트 주민들이 세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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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집 마련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

가슴 조마조마했던 지난 2년간을 떠올리던 박태기(朴泰基.40.벤처기업인.포항시 북구 용흥동 보성타운)씨는 모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공업체 부도로 길거리에 나앉을 뻔하다가 입주예정자가 합심, 아파트를 짓고 6일 등기필증을 받음으로써 내집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보성타운 입주자들이 곤경에 처한 것은 1998년 1월 시공업체 ㈜보성이 부도나면서부터. 96년 4월부터 짓던 지상 24층, 지하 2층 2개동 2백77가구 공사가 공정 78%에서 중단됐다. 입주예정자의 분양대금 1백억원은 이미 투입된 상태였다.

朴씨는 98년 10월말 입주 예정은 고사하고 "영영 내집을 잃는 것 아니냐" 는 불안감으로 밤잠을 설쳤다. 시공 중인 아파트가 부도 날 경우 주택공제조합 등 다른 사업자가 이를 승계하는 제도가 있지만, 이 경우 입주시기가 언제가 될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주민이 직접 아파트 건설에 나서기로 하고, 99년 3월 입주자 8명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자신이 회장을 맡았다.

1주일에 2~3번씩 새벽 까지 대책회의를 열며 길을 모색한 대책위는 같은 해 6월 마침내 보성과 다시 약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 입주자가 사실상 사업시행자가 되는 조건이었다. 대책위에 공감한 주민들은 중도금과 잔금 등 공사에 필요한 돈을 기꺼이 내주었다.

"입주가 늦어져 보성에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한다" "아파트를 포기하겠다" 는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 지난해 7월초 공사를 재개, 5개월만에 공사를 끝내고 연말 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주민들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파트 사업승인 조건이었던 아파트 앞 포항의료원~연화재(너비 12m, 길이 9백80m)간 도로가 뚫리지 않아 포항시로부터 아파트 사용검사를 받을 수 없었던 것. 입주민들은 또다시 돈을 마련, 지난 5월 도로까지 뚫었다.

말썽거리였던 도로부지 개인 땅도 포항시의 협조를 받아 보상을 마쳤다. 부도후 입주민이 내야할 분양금 1백억원의 대부분을 투입한 것이다.

朴씨는 "등기를 마칠 때까지 입주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며 "입주민들의 단결이 결국 내집 마련의 길을 열었다" 고 회고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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