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정재기 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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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저의 작은 노력과 수고로 동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 대조립 5부에 근무하는 정재기(鄭在琪.48)반장은 2만6천여명의 동료들로부터 '재봉틀 아저씨' 로 불린다. 생산현장에서 작업하거나 점심시간에 운동을 즐기다가 옷이 터지거나 찢어지면 그를 찾아온다.

鄭반장은 동료들의 작업복을 꿰메거나 새로 지급된 명찰을 달아주기 위해 4년 전 집에 있던 재봉틀을 자신의 사무실에 옮겨놨다.

바느질 솜씨 소문이 퍼져 옆 부서는 물론 다른 사업부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찾아와 부탁한다. 그 바람에 점심을 서둘러 먹은 뒤 나머지 시간은 꼬박 재봉틀 앞에서 보내고 있다.

한꺼번에 일감이 몰려 점심시간에 모두 수선할 수 없을 때는 퇴근시간 이후 혼자 남아 재봉틀을 돌리기도 한다.

"요즘 재봉틀이 있는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바느질하기도 번거롭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 옷이 제품에 걸려 실밥이 터지거나 찢기는 경우가 생기는데 동료들이 그것을 들고 달려옵니다. "

전북 고창에서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동생들의 옷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거들면서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배웠다.

1981년 결혼한 뒤 집에서 아내(김귀례.42)로부터 본격적으로 재봉기술을 배웠다. 지금 鄭반장이 사용하는 재봉틀은 아내가 시집오면서 사온 것으로 원래는 발틀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쓰기 편리하도록 손틀로 개조했다.

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철판의 몇 군데를 점(點)용접해 본(本)용접을 할 수 있도록 틀을 잡아주는 '취부사' 에서 줄곧 일해 왔다.

"짜집기에 필요한 천은 집에서 입지 않는 옷을 가져와 사용하며, 재봉실 값은 한달에 3천~4천원 정도 들어갑니다. "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동료의 옷을 수선해 주겠다는 鄭반장은 "이렇게 날마다 옷수선 실력을 쌓다 보면 퇴직한 뒤 세탁소를 차려도 되지 않겠느냐" 며 환하게 웃었다.

김동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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