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갈비 1인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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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10면

혼자 식당에 가면 환영받지 못한다. 그것도 요즘 같은 연말에 갈비 파는 식당을 찾는다면 문전박대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늦은 퇴근길 배는 고프고 고기 굽는 냄새가 넘실넘실 거리로 흘러나와 창자를 잡아당기면 유혹을 물리칠 재간이 없다. 나는 곧 한 사람이 더 올 거라고 말하고 일단 갈비 1인분을 주문한다.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의 당혹과 주문을 전해 듣는 사장의 절망을 애써 외면하면서.

혼자서 갈비 1인분을 먹다 보면 10년 전 기억 하나가 육즙처럼 올라온다. 그때 나는 가족과 떨어져 일본 지바의 나루토에 있는 야키니쿠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명절처럼 특별한 때가 아니면 단골손님이 정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간격으로 꼬박꼬박 찾아오는 식당이었다. 점원인 나는 일본어는 서툴렀지만 단골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몇 마디 안부와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손님들과 친했다.

연말 분위기는 일본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망년회니 송년회니 해서 단체손님이 우르르 와서 먹고 마시고 떠들다 우르르 몰려나간다. 그날도 단체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자 마칠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어쩐지 파장 분위기였다. 그때 처음 보는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들. 아버지는 메뉴를 보더니 갈비 1인분만 주문한다. 그러고는 “우리는 저녁을 먹었거든. 이 녀석만 먹이려고”라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우동 한 그릇’이란 동화를 읽은 적이 있어 주방장에게 “1인분 반 정도의 양으로 갈비 1인분”이라고 주문을 넣었고, 역시 ‘우동 한 그릇’을 읽은 적이 있는 데다 점심으로 우동 한 그릇을 먹기까지 한 주방장은 1인분 하고 3분의 2 정도의 갈비를 접시에 내어놓았다.

부모는 아들이 1인분 하고 3분의 2 정도의 갈비를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들은 혼자만 먹기 그랬는지 먹다 말고 몇 번이나 부모에게 권한다. 그때마다 부모는 배가 부르다면서 별로 나오지도 않은 자신들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뭐가 우스운지 셋이서 웃는다. 아버지는 목이 말랐던지 물을 자주 마셨고 어머니는 아들의 식사 내내 환한 웃음을 침처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이 돌아갈 때 식당 바깥까지 나가 나는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인사는 그렇게 했지만 그들이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가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뭔가를 내 호주머니에 기어코 넣어준다.

“뭔가 주고 싶은데 지금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그는 마치 짝사랑하는 선생님 책상 위에 몰래 선물을 올려놓고 달아나는 학생처럼 그렇게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연말에 혼자서 갈비 1인분을 먹을 때면, 셋이서 갈비 1인분을 먹으면서 내내 웃던 그 가족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부끄럽게, 그러나 기어이 내게 주었던 선물도 생각난다. 전철역 앞에서 나눠주는 유흥업소 홍보용 콘돔이.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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