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 "망자의 약속, 유족이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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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망자의 약속은 그 유족들이 지켜야한다. "

중국 옌볜(延邊)에 사는 조선족 嚴모(60.여)씨는 1990년 9월 만난 한국인 韓모(여.99년 사망)씨로부터 "북한에 살고 있는 조카들을 만나게 해주면 북한측과의 합작사업에 투자하겠다" 는 제의를 받았다.

북한에 봉제공장을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던 嚴씨는 중국 내 북한대사관 관계자와 접촉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韓씨는 91년 8월 중국에서 두 조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카들을 만난 뒤 韓씨의 태도가 달라졌다.

원래 약속한 약정금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몇년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북한에 봉재 설비를 비롯, 상당한 투자를 이미 해놓은 嚴씨는 갖은 수단을 강구해 봤지만 韓씨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없었다.

결국 嚴씨는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법대로 처리한다" 는 계약조건을 들어 韓씨를 상대로 98년 약정금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하지만 고령인 韓씨가 소송 도중 숨졌고, 유족들도 "그런 약속은 모르겠다" 며 버텨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8부(재판장 蔡永洙부장판사)는 "피고측은 원고와 함께 설립하기로 한 합작기업의 운영에 필요한 재봉기계와 자금을 공급하지 않아 원고가 손해를 본 만큼 1억2천여만원의 피해를 보상하라" 며 嚴씨 손을 들어줬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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