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금융 구조조정 물건너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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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금융정책 담당자들의 최근 발언들은 많은 이의 귀를 의심케 한다.

"지금까지 생존한 금융기관이면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 (재경부)

"자구책을 마련하면 적기시정조치(구조조정 요구)를 유예하겠다. " (금감위)

"인력.조직의 감축없이 구조조정토록 하겠다. " (금감위)

"금융지주회사가 반드시 합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재경부)

"부실 발표를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부실이 심하지 않았다. " (재경부)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금융기관들은 구조조정을 할 필요도 없고 더구나 문닫는 일이 없다" 는 것이다. 불과 수개월 전 "올해 안에 금융기관의 2단계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 던 것과는 천양지차로 돌변한 입장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의 신용경색을 풀어보려는 금융당국의 충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융노조의 파업 움직임이 대변하듯, 신용경색의 밑바탕에 향후 추진해야 할 구조조정에 대한 금융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금융 구조조정 회피를 방조하는 듯한 금융당국의 최근 발언은 마치 금융노련 위원장이나 할 법한 말처럼 들린다. 정부와 민간이 이렇게 민감한 사항에 대해 '한 마음 한 뜻' 이었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금융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부처와 이를 바라보는 시장이나 민간 전문가간에 신용경색의 근본원인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지금 금융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다시 확대일로에 있는 기업부실, 이에 점차 심화하고 있는 금융부실, 또 부실 해소보다 '하루살이 대책' 에 연연하는 정책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금융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알고 있을 금융당국이 부실해소와 구조조정을 늦추라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성공적인' 구조조정과 금융안정을 업적으로 남기고픈 현 금융정책팀의 소망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전문가도 많다.

금융의 2단계 구조조정은 이제 물건너간 것인가.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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