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시인 김광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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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반세기 전/채 약관도 안된 홍안의 소년이/혈혈단신 38선을 넘어와서/이제 백발이 성성한 고희도 넘겼는데/여전히 동강난 채 있는 우리의 허리/남북의 피가 소통치 않아/쑥밭이 돼 버린 우리의 가슴앓이" ( '나의 마지막 소망' 중)

백발 노시인 김광림(71)씨는 판문점 가는 길에서 동북쪽으로 꺾어 들어간 남한의 최북단 산골에 살고 있다.

남북을 가로막는 빗장이 풀리면 한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서 10년전 서울을 떠나 경기도 파주로 옮겼다.

민가보다 군부대가 더 많은 산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북녘땅이 멀리 내다보이는 언덕에 세련된 벽돌 양옥이 나타난다.

조각가인 둘째 아들 상일(43)씨가 직접 지어 울타리도 담장도 없는 마당 곳곳에 조각품들이 널려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다고 해 적십자에 등록할 서류를 쓰고 있던 중이요. 이번에도 많이 못간다던데…, 거기 뽑히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모르잖아요. "

김씨는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열아홉 살이던 1948년말 홀로 38선을 넘었다.

이념이나 종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서울로 유학한다는 생각" 에서 가볍게 떠난 발걸음이 반세기가 넘도록 막혀있는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공하고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진다는 언론보도를 보고는 실향민 모임에 나가 서류를 타왔다.

살아있으면 아흔을 넘겼을 부모님이라 벌써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를 떨칠 수 없다.

노시인은 이런 마음을 담아 최근 '어서 열어다오 고향 가는 길' 이란 망향 에세이도 내놓았다.

한국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고, 일본의 시와 시인을 한국의 문학잡지에 소개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고희를 넘겨서도 시와 관련된 일로 바쁘기에 "행복하다" 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허전한 듯 얘기 중에도 자주 북녘 하늘을 바라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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