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은행 어깃장에 멍드는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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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1일 - 만기 돌아온 어음 19억원 1차부도.

22일 - 21일분 부도 막고 다시 어음 29억원 1차부도.

23일 - 22일분과 새로 만기 돌아온 어음 25억원 결제.

24일 - 만기 돌아온 24억원 1차부도.

26일 - 24일분과 새로 만기 돌아온 27억원 결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중인 중견 건설업체 우방이 지난 1주일간 치러낸 '부도와의 전쟁' 일지다.

우방 관계자들은 24일로 이미 1차부도를 세차례 냈기 때문에 26일에 새로 만기된 어음을 막지 못했다면 관련 규정상 자동 부도처리됐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 땀이 흐른다고 말한다.

워크아웃 계획에 따라 채권단으로부터 정상 경영을 할 수 있게끔 두차례에 걸쳐 채무조정까지 받았던 우방이 이처럼 사선(死線)을 넘나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방과 채권금융기관들은 "기업에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채권단 합의에 따라 자금을 지원키로 했던 주택은행이 제 욕심만 차리느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초 우방 채권단협의회는 주택은행이 5월말 우방으로부터 1천억원의 대출금을 회수해간 대가로 지난 21일 3백억원의 운영자금을 신규 대출해 주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주택은행이 '우방이 망할 경우 이 대출금을 우선 변제받는다' 는 전제조건을 내세우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주택은행은 "채권단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우방이 부도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 는 다른 금융기관들의 질타에 그날 그날 1차부도를 막을 만큼의 돈만 찔끔찔끔 지원했고, 결국 1주일 만인 27일 우선변제권을 보장받고서야 나머지 잔액 지원을 마쳤다.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은행이 그 정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는 게 주택은행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주택은행이 지난 1주일간 대출금 3백억원에 대한 안전장치를 얻는 사이 우방은 증시에서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고객들의 신뢰를 잃는 등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우방 관계자는 "부도설이 퍼지면서 분양 아파트 당첨자들이 중도금 납입을 기피하고 있다.

월말이면 보통 3백억~4백억원씩 돈이 들어오는데 이달엔 10분의1도 안들어왔다" 고 하소연한다.

우방 사태는 '기업을 살려 은행도 함께 살자' 는 워크아웃의 근본 취지가 은행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뿌리째 흔들릴 수 있음을 실감케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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