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못찾는 의료계폐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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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의료계가 팽팽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며 타협점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대화는 시작했으나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당근과 채찍을 담은 사실상 '최후 통첩안' 을 마련,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정면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 건강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점에서 정부나 의료계 모두 부담은 크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정부로서는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을, 의료계는 폐업까지 하며 얻어낸 것이 무엇이냐는 질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 먼저 양보하라〓현재까지는 한 치의 양보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실제 22일에는 전화 한 통화 오가지 않았다.

정부와 의료계 양측은 21일 어렵게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의협은 의약분업의 '선보완 후시행' 을, 정부는 '선시행 후보완' 이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양측은 약속이나 한듯 "뭔가 가져올 줄 알았는데 빈손으로 올 수 있느냐" 고 서로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 상황은 22일에도 계속됐다.

의협 관계자는 "우리가 의약품 전면 재분류 등 기존의 열가지를 다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부가 먼저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확실히 해달라" 고 요구했다.

그는 "폐업을 접으려면 회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정부에서 줘야 한다" 고 했다.

정부는 상당히 파격적인 타협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보수가가 비현실적인 점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조속히 인상하고 병원에 세제.금융혜택까지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시행 후보완' 은 그대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희생을 치르더라도 원칙대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협의 의사결정 구조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의협 구성원마다 요구사항이 다르다.

어느쪽에 주안점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 핵심은 진료권〓의료계는 두가지로 압축한다.

의사의 진료권과 책임자 문책이다.

전자는 약사의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금지하기 위해 약사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일단 분업을 시행한 후 3~6개월 뒤에 문제가 있으면 고치겠다는 식이 아니라 이번 임시국회에서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회원들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비난이 부담스럽지만 폐업을 시작할 때 각오한 것이고, 의사의 권위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마당에 더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은 확고하다.

분업 시행 후 약사법 개정이라는 원칙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진료권 문제는 이미 의.약.정이 합의했던 내용이고, 지금 바꾼다면 의약분업의 한 축인 약사들이 반발할 것" 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약사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의사들을 만족시키는 묘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2자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약계를 포함한 3자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전망〓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여당도 의료계와 부단히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진료를 방해한 혐의로 대구시 의사회 부회장을 구속하고 의협회장과 의쟁투위원장 등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면서 의협이 강경분위기로 돌변, 협상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당에서 23일 고위 당정회의를 열어 의료계가 수용할 만한 협상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해 결과가 주목된다.

하지만 의료계의 요구 가운데 진료권에 대해서는 즉답을 내놓기 힘들 것으로 보여 폐업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신성식.기선민.손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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