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에 국군포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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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이 그제 국회에서 "국제법적으로는 북한에 국군 포로가 없다" 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가 공식 확인한 2백68명을 포함해 3천여명의 국군 포로 생존자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당에 이게 무슨 말인가.

안그래도 남북 공동선언에 국군 포로.납북자 문제가 명시되지 않아 불안해 하는 남한 내 친지들의 가슴에 또한번 못을 박는 경솔한 언사다.

물론 朴장관이 어제 한 해명을 들어보면 이해되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전협정에 이은 포로 교환을 통해 국제법적으로는 종결된 만큼 이산가족 차원에서 국군 포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고 해명했다.

그렇더라도 "포로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는 북한측 주장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측은 한국전쟁 휴전 후 한국군 1천6백47명.미군 3백89명의 명단을 파악해 1960년대까지도 군사정전위를 통해 북한측에 송환을 요구해 왔으므로 '법적으로 종결됐다' 는 주장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국방부가 朴장관의 발언을 사실상 반박하고 나서는 등 정부 부처간 입장 차이가 드러난 것도 한심한 모양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朴장관의 말대로 국군 포로 송환이 이산가족 문제 차원에서 착착 이뤄진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러나 올해 8.15 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산가족 상봉은 겨우 1백명 규모다. 수십만 이산가족들도 초조하게 상봉을 바라고 있는 마당에 대부분 고령자인 국군 포로 중 과연 몇 명이 혜택을 보게 될지 의문이다.

상봉은 그렇다 치고 자유의사에 의한 귀환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정부 내에 이미 대책위원회가 설치돼 있고, 얼마 전까지도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송환 성사나 비전향 장기수와의 교환 같은 방안들이 논의되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국군 포로는 없다" 는 발언이 나오니 황당해지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朴장관 발언이 자칫하면 나라를 위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홀대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북한 내 전사자 유해까지 찾아와 모시지는 못할 망정 살아 있는 사람마저 외면한다는 오해를 자초해선 곤란하다.

물론 엄연히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사안이므로 한계와 애로도 있겠지만 국민은 정부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공연한 발언으로 다른 송환 촉진 수단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고 군의 사기나 꺾어 놓아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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