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협력할건 하지만…" 속수무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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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 정상회담이 55년만에 열려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데 대해 환영하며 앞으로도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그렇지만 남북 공동선언문 등과 관련해 야당 영수로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안들도 많이 있다.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6일 총재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그의 첫 언급이다.

李총재는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환상적인 꿈을 갖고 있는 이 때 비록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면(야당이)찬물을 끼얹는다는 식의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는 게 李총재가 밝힌 이유였다.

그래서 李총재는 이날 예정된 기자간담회를 취소하는 등 말을 아꼈다.

대신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있을 김대중 대통령과의 여야 영수회담 준비에 몰두했다.

이를 위해 부총재들의 견해를 들었고, 당내 남북관계특위로부터 정상회담 분석 보고서를 받아봤다.

李총재는 영수회담에선 할 말은 다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공동선언문 1항과 관련해선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金대통령에게 묻고, 특히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의 '외세배격' 논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한.미 관계의 손상 가능성은 없는지 따질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제2항에 적시된 '남북 통일방안의 공통성' 에 대해서는 李총재가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게 당직자들의 예상이다.

총재단회의에서 부총재들은 "金대통령의 '남북연합' 통일방안은 야당시절 개인적으로 정리했던 것으로 정부차원에서 단 한차례도 집중 논의된 바 없고 국민적인 합의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며 "그것이 국가의 통일방안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큰 문제" 라고 주장했다.

李총재도 金대통령에게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통일방안에 대한 여야간 협의와 범국민적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2항이 결국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한다.

3항의 이산가족 상봉은 1회성 행사가 돼선 안된다는 점,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국군포로.납북자문제와 '반드시' 연계하는 상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할 방침이다.

李총재는 다음주 중 기자회견을 갖고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자신의 정리된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민은 계속 남는다.

여권이 정상회담 이후의 정국을 일방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통일' 의 흐름은 크고 야당의 운신폭은 좁은 상황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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