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역사적 서명 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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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2000년 6월14일 오후 11시20분. 남과 북의 두 정상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합의문에 서명을 했다. '남북 공동 선언' .

합의문 서명에는 우리측에선 임동원(林東源)대통령특보가, 북측에선 김용순 위원장이 배석했다.

합의문서는 우리측 김하중(金夏中)의전비서관이, 북측에선 전희정(全熙正)국방위원장 의전담당비서가 상대측 정상에게 전달했다. 우리측이 준비한 합의문서는 짙은 갈색, 북측의 것은 파란색이었다.

양측이 각각 작성한 세쪽짜리 합의문에 서로 서명을 한 두 정상은 합의문을 교환한 뒤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만면에 함박웃음.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쥔채 만세를 외치듯 두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배석한 우리측 공식 수행원들과 북한측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의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두 정상은 미리 준비한 샴페인으로 축배했다. 양측 수행원들도 함께 잔을 들었고 金위원장은 이헌재(李憲宰)재경장관 등 우리측 수행원들과 일일이 건배했다. "쨍" "쨍" 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金위원장이 단숨에 잔을 비우자 수행원들도 따라서 '원샷' 을 했다. 술이 약한 金대통령은 金위원장과 수행원들이 웃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네 모금만에 잔을 비웠다. 다시 박수가 터졌고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은 다시 굳은 악수를 나눴다.

이어 두 정상을 중심으로 양측 수행원들이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 모두들 밝은 표정이었다.

회의장을 무리지어 나오면서도 金위원장은 우리측 수행원들에게 일일이 악수와 함께 농담을 건네며 친근감을 표했고 그때마다 옆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金위원장은 특히 임동원 특보에게 "그쪽에서 상호주의 얘기 하는데 우리는 호상주의라고 한다" 고 말해 웃음보를 터뜨리게도 했다.

숙소를 향해 헤어질 때까지 두 정상이 나눈 악수는 모두 네차례. 표정과 몸짓에선 감격이 넘쳤다. 金대통령과 헤어지면서 金위원장은 "오늘은 근심도 걱정도 없이 마음놓고 올라가 주무십시오" 라고 인사했고 金대통령도 파안대소 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6.14서명' 의 감동적 장면은 이렇게 진행됐다. 앞서있던 만찬에서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고 감격에 겨워했던 金대통령. 서명 순간에 그런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金대통령은 합의한 뒤 "화해와 협력과 통일에의 희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오후 6시50분 백화원 영빈관. 金대통령과 金위원장이 환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3시간5분의 마라톤 회담 끝에 5개항을 합의해낸 순간이었다. 회담은 오후 3시~5시20분, 오후 6시5분~6시50분 두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金위원장은 전날의 갈색 점퍼형태 인민복 대신 공식 국가 행사에서 착용하는 회색 인민복 정장을 입었다. 두 정상은 영빈관내 회의실에서 열린 단독회담에 앞서 5분간 공개대화를 나눴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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