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박찬호, 1실점 완투 8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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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직구는 여전히 위력적인 무기였다. 다저스타디움에 모여든 3만4천여명의 관중은 마지막 타자 스티브 핀리의 타석 때 모두 기립박수를 준비했다.

마운드의 박찬호는 핀리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1998년 9월 6일 이후 거의 2년 만에 맛보는 완투승의 감격. 그 감격은 바로 직구의 원초적 아름다움에서 비롯됐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LA 다저스)가 같은 지구 1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9이닝 동안 4개의 삼진을 빼앗으며 4안타 1실점으로 호투, 6 - 1 완투승을 거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날 박찬호가 커브를 승부구로 쓰리라 예상했다. 박의 커브가 워낙 위력적인데다 다이아몬드 백스의 막강 좌타자들을 상대하려면 자신의 최고무기를 많이 던져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은 경기 시작부터 포심패스트볼. 즉 볼끝이 떠오르는 빠른 공으로 승부를 걸었다. 1회 세 타자 모두, 그리고 2회 첫 타자까지 네 명의 타자가 볼의 밑부분을 때려 플라이볼로 아웃된 것이 그 증거다. 박은 4회까지 12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7개를 플라이볼로 잡아냈다.

박찬호는 지난 5월 8일 다이아몬드 백스 타선에 3.1이닝 동안 8실점하는 치욕을 당했다. 박은 경기를 앞두고 그날의 기억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했다. 타자들의 특성과 장단점을 분석하고 약점을 캐내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얻어낸 결론이 바로 직구였다. 박은 1백8개의 투구 가운데 74개의 직구를 던졌고 변화구는 34개만 구사했다. 빠른 공 투수로서의 위용을 되찾은 것이다.

다저스 타선은 1회말 개리 셰필드의 2점홈런으로 기선을 잡았고 2 - 1로 쫓긴 5회말에는 마크 그루질라넥의 2루타와 상대실책으로 2점을 도망가 박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박은 5회부터 패턴을 바꿨다.

빠른 공을 포심에서 투심 위주로 바꿔 승부했다. 떨어지는 공이 많아지면서 땅볼타구가 늘어났다. 5회 세 타자가 모두 땅볼이었고 6회에도 두 타자를 땅볼로 잡아냈다.

이날 박은 5회까지 삼진이 하나도 없었다. 직구 위주로 피하지 않고 타자들을 상대해 범타를 유도했다. 볼넷 역시 3회 하나밖에 없었다.

덕분에 투구수가 줄었고 완투까지 가능해졌다. 박은 체력 안배에도 성공해 8회초 토니 워맥을 상대로 최고스피드 96마일(1백55㎞)을 기록했을 정도다.

박은 4연승을 거두며 시즌 8승(4패)을 기록했고 방어율도 3점대(3.99)로 낮췄다. 이제 올스타전 출전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위치까지 됐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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